소개
5구의 불상과 2구의 보살상으로 된 이 석불들은 모두 통견의 법의를 걸친 입상과 좌상으로 7구의 불상들은 모두 양 어깨를 감싼 옷을 입고 있는 입상과 좌상으로 얼굴과 세부기법, 특히 옷주름 표현과 손모양 등을 감안할 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최저 1.4m에서 최고 5.5m에 이르는 이 석불들은 장육불 또는 그 이상의 거대한 불상이란 점과 함께 뛰어난 기량을 보여 주고 있어서 귀중한 고려 불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들 중 왼쪽 3번째의 불상은 머리 위에 솟아 있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유난히 크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신체는 전체적으로 양감이 풍부하며 가슴 부위에 卍 자가 양각되어 있다. 왼쪽 5번째 불상은 독특한 옷주름이 있고, 뒷면에는 거대한 나한상(羅漢像)이 조각되었는데 이는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머리 부분과 양 손을 나중에 보수한 석조여래입상은 머리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큼직한 것이 특징이다. 당초 석불이 있던 사찰의 이름과 창건, 폐사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93년 전신주 매설공사중 발견된 바리, 종등과 남아있는 초석, 석탑 등으로 미루어 신라 말에서 고려대의 대사찰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의 용화사(龍華寺)는 고종 광무 6년(1902)에 창건되었는데 상량문에 의하면, 광무(光武) 5년(1901) 엄비의 꿈에 청주에서 7개의 석불이 나타나 집을 지어 달라하여 사람을 보내어 조사한 바 무심천변에 방치되어 있던 석불이 있어 사찰을 세우고 석불을 안치토록 하였다고 한다. 당시의 군수 이희복은 상당산성 내에 있던 보국사를 헐어 사찰을 세웠는데, 미륵불이 성불한 장소인 용화수의 이름을 따서 용화사라 하였다. 창건 당시 사찰의 규모는 미륵전 15칸, 산신각⋅칠성각 3칸, 설교전 15칸, 대중요사 15칸, 행랑4칸의 비교적 큰 규모였는데, 6⋅25때 전부 타버리고 1972년에 시멘트 건물로 재건하였다가 1995년에 석조불상군(石造佛像群) 보호를 위해 미륵보전을 크게 신축하였고 2008년 극락전을 지어 작은 4개의 불상을 따로 이전 안치하였다. 1989년 4월 15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985호 청주용화사석불상군(淸州龍華寺石佛像群)으로 지정되었다가, 2010년 8월 25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