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청화사(淸華寺)는 도심 속의 산 속에 자리 잡은 작은 사찰로 1940년에 창건되었다. 이전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법당과 그 옆에 요사채의 건물이 있었으며, 법당 뒤로 2개의 보호각을 지어 각각 동종(銅鐘)과 석조비로자나불좌상(石造毘盧遮那佛坐像)을 안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2년 화재로 법당(法堂)은 전소되어 현재는 중건되지 못하고 있으며, 불상만 인근 봉사자들에 의해서 관리되고 있다. 불상은 노천의 보호각 안에 봉안되어 있고, 사찰 건물로는 삼성각 등이 보존되고 있다.
이 불상은 일제강점기에 청주시 대성동 당산공원의 일본인 신사 터에 옮겨졌다가 해방 이후 구 청화사로 이전 봉안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원래의 위치는 알 수 없으며, 고문헌(古文獻)기록도 전해지지 않고 있어 불상의 출처와 내력을 전혀 알 수 없다.
청화사 자리도 옛 절터는 아닌 것으로 보아 청주 우암산 인근의 절터에서 당산공원(堂山公園)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지금의 자리로 옮겨 봉안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측치는 전체 높이(全高) 121㎝, 보관 높이(寶冠高) 16㎝, 머리 높이(頭高) 30㎝, 머리 폭(頭幅) 17㎝, 몸체 높이(身高) 44㎝, 어깨 폭(肩幅) 32㎝, 무릎 폭(膝幅) 48㎝, 대좌 높이(臺座高) 21㎝, 대좌 폭(臺座幅) 60㎝, 광배 폭(光背幅) 12㎝이다.
이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불신(佛身)과 광배(光背), 대좌(臺座)가 一石으로 조성되어 있다. 머리에 쓰고 있는 삼면 보관이 매우 특이하며 상호(相好)는 긴 편이다. 목에는 가늘게 조각 된 삼도(三道)가 뚜렷하고, 법의(法衣)는 통견(通絹)에 옷 의문(衣紋)은 좌우대칭(左右對稱)을 이루었다. 수인(手印)은 지권인(智拳印)이며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무릎 부분이 파손되어 보이지 않는다. 광배는 거신광배(擧身光背)로서 바깥에는 황염문(火焰紋)이 나타나 있고 신광(身光)과 두광(頭光)이 별개로 표현되었으나 윗부분에 균열이 있다.
대좌는 원형의 앙련대좌(仰蓮臺座)로써 상대석(上臺石)으로 추정되며 하대석(下臺石)과 중대석(中臺石)이 결실 되어있고 원위치와 유래를 알 수 없으나 전체적으로 조각수법이 우수하고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