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임진왜란 때 동래성을 지키다 순절한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과 그 후손들의 가계 내에서 배출된 열녀(烈女), 효부(孝婦)의 정려(旌閭)로써 그 내력과 정려를 내리게 된 경위들이 잘 기록되고 실물로 남아 있어 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중의 역사적 모습을 잘 보여준다. 충렬각은 묘소 이장 후 세운 것으로 보이며 1594년(선조 27) 12월에 처음 명정되었고, 1704년(숙종 30년)에 한금섬과 이양녀의 열녀문을 합쳐 다시 세운 것이다. 또한 후손 송현기(宋鉉器, 1684~1750)의 처 밀양 박씨의 효열각, 송명휘(宋明輝, 1737~1793)의 처 연일정씨의 효부각이 있다. 이러한 일문삼려(一門三閭)의 형식은 흔치 않은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