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청주 금성대군 제단은 세종대왕의 여섯 째 아들인 금성대군 이유(錦城大君 李瑜, 1426〜1457)의 제단이다.
금성대군 이유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 사이에서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천성이 강직했으며 문장가로도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성삼문(成三問) 등 사육신死六臣과 함께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어,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으로 귀양을 갔다. 그곳에서 순흥부사順興府使 이보흠李甫欽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모의하다 한 관노의 밀고로 체포되었고, 1457년 10월 사사(賜死)되었다. 이후 1528년(중종 23)에 신원이 복원되었으며, 1739년(영조 15)에 정민공貞愍公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금성대군 제단은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제단 형태인 ㅁ자형이다. 금성대군의 부인인 완산부부인完山府夫人 전주최씨의 묘소 왼쪽에 있다. 전주최씨의 묘소는 금성대군의 차증손인 홍양정洪陽正이 개장改葬한 것으로 전한다.
금성대군 제단은 축조 당시의 묘제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