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청주를 대표하는 신항서원莘巷書院은 1570년(선조 3) 경연慶延·박훈朴薰·김정金淨·송인수宋麟壽를 제향하기 시작하여 모두 9분의 선현을 모시고 있다. 서원은 강당인 계개당繼開堂과 사당인 구현사九賢祠, 묘정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항서원은 1570년 창건 이후 1642년(인조 20) 다시 고쳐 지으면서 한충韓忠을 추향追享하였다. 또한 1650년(효종 1)에는 송상현(宋象賢)·이득윤李得胤을 추향하고 1656년(효종 7) 이이(李珥)·이색(李穡)을 추향하여 현재 9분을 제향(祭享)하고 있다. 처음 이곳 지명을 따라 유정서원有定書院이라 하였다가, 1660년(현종 1)에 사액(賜額)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1665년(현종 6) 이이를 독향獨享하고 나머지 인물을 배향(配享)하는 문제로 위차[위패를 놓는 순서]시비가 일어 지역 노론과 반대 세력이 크게 충돌하였다. 이후 송준길의 의견을 채용하여 이이를 동벽 첫 순위에 두었다. 1871년(고종 8) 훼철되었다가 1892년(고종 29) 복구가 허락되어 1904년(광무 8) 복설하였고 1957년 다시 세웠다.
신항서원이라 편액된 삼문을 들어서면 앞쪽에 묘정비가 있다. 묘정비는 1685년(숙종 11)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이 찬하고, 서원현감西原縣監 조형기(趙亨期)가 쓰고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 전액을 썼다.
묘정비 뒤로 앞면 5칸, 측면 2칸 크기의 강당인 계개당이 있다. 강당 뒤로 다시 삼문을 지나 앞면 3칸, 측면 1칸 크기의 사당인 구현사가 위계를 이루며 자리한다.
신항서원은 청주를 대표하는 서원이다. 1570년 창건한 이후 여러 차례 추향과 사액, 위차 시비를 거쳐 아홉 분의 성현을 모신 서원으로 훼철과 복원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처음 지역의 사림과 명망가를 모신 서원으로 출발하여 점차 노론계 서원으로 자리잡았다. 추향과 위차 시비를 통해 노론계 서원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