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고려 후기의 문신 연담 곽예(蓮潭 郭預, 1232〜1286)의 묘소이다.
청주 곽예 묘소는 본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에 있던 것을 1975년 국토개발지구로 지정됨에 따라 지금 위치로 옮겼다.
곽예는 본관은 청주이고 자는 선갑先甲, 호는 연담으로 1255년(고종 4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첨사부녹사詹事府錄事·국자감대사성國子監大司成·감찰대부監察大夫 등의 관직을 지냈다. 고려 원종 때 왜구 침범을 꾸짖고 납치해간 고려인의 송환을 요구하기 위하여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충렬왕 때 원나라 황제의 생일 축하사절단으로 원나라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별세하였다. 사람됨이 강직하고 소박하여 높은 지위에 이르러서도 옛날과 다름이 없었다고 한다. 글을 잘 짓고 글씨에도 능하여 독특한 서체를 이루어 당대의 명필가로 이름이 높았다. 곽예 작품의 일부는 『동문선(東文選)』에 전한다.
곽예 묘소의 봉분 규모는 390×150㎝이다. 앞에 상석과 2개의 묘비가 있고, 좌우에 문인상이 있다. 묘비의 글은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炫이 지었다.
묘소 인근에 곽예의 사당인 상당사上黨祠가 있으며, 1884년(고종 21)에 세운 곽예 신도비가 있다. 곽예 신도비는 사각형의 받침돌과 팔작지붕의 덮개돌을 얹은 형태이다. 신도비의 전체 높이는 230㎝이고, 비신의 높이는 176㎝이다. 비문은 김복한金福漢이 짓고 오영근吳英根이 글씨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