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1729년(영조 5년)에 경주인(慶州人) 김정구(金鼎九)의 효행을 기리어 나라에서 세운 정려로 2015년 4월 17일 청주시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되었다. 후에 김정구의 아우 정오(鼎五), 정삼(鼎三), 정일(鼎一)을 합설하여 4형제의 효자각이 되었다. 지금의 효자각은 1931년에 중건하고 1985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칸, 측면 1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으로 미원면 행정복지센터 부지 내에 있어 비교적 찾기 쉬운 편이다. 철제로 4면에 울타리를 두르고 철제문을 달아 출입을 돕고 있으며 정려의 사면은 둥근 돌기둥 위에 나무 기둥을 올리고 홍살로 막았다. 안에는 ‘효자증참판경주김공정구지문(孝子贈參判慶州金公鼎九之門)’과 ‘정오증호조좌랑(鼎五贈戶曹佐郎)’, ‘정삼급복증좌승지(鼎三給複贈左承旨)’, ‘정일생원(鼎一生員)’의 효자문 편액을 한 목판에 새겨 걸었다. 밖에는 ‘효자정각(孝子旌閣)’이라 쓴 현판을 달았고 왼쪽에는 ‘쌀안[미원]의 유래비가 서 있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 고을은 본래 마한(馬韓) 땅으로 백제 때 상당현(上黨縣), 통일신라 때 서원경(西原京), 고려와 조선 시대 때 청주목(淸州牧)에 속하였으며 상당산(上黨山)의 안쪽에 있어 산내일면(山內一面)이라고 하였다. 산내일면을 줄여 ‘산내(山內), 산안(山-), 쌀안’으로 변하였는데 이 중 ‘쌀안’이 토속 지명으로 남아 있다. (생략) 옛날 큰 가뭄이 들어 다른 지역에서는 굶주리는 사람이 많았지만 산수 좋은 이 고을은 풍년이 들었는데 마침 며칠 동안 끼니를 굶은 한 스님이 이곳을 지나다가 기절하여 주민이 극진히 보살피고 여러 날 대접한 뒤 공양미까지 넉넉하게 시주하니, 스님이 흉년 없는 쌀 고을의 안쪽이란 뜻으로 ‘쌀안’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떠났다는 ‘쌀안유래전설’을 고을의 자랑으로 여겨 길이길이 전승하고 있다. 라고 전해진다.’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는 김정구와 아우 3형제의 효자문 편액을 한 목판에 새겨 걸었다. 밖에는 “효자정각(孝子旌閣)”이라 쓴 현판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