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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 손병희 선생 # # #
제3 월호 의암 손병희 선생은 누구
의암 손병희 선생은 누구
의암 손병희 선생은 1861년 4월 8일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금암리(옛 충청도 청주목 산외이면 대주리)에서 태어났다.
1882년 동학에 입교해 2년 후 교주 최시형을 만나 수제자로서 수도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통령으로서 북접의 농민군을 이끌었다. 남접의 정봉준과 논산에서 합세해 호남, 호서를 석권했다. 이어 북상해 관군을 격파했지만 일본군의 개입으로 실패하고 원산 등지로 피신했다.
1898년 최시형이 처형당한 후 탄압을 피해 1901년 일본으로 밀항했다.
선생은 1906년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교주가 됐다.
선생은 1908년 천도교 교주를 박인호에게 넘기고 민족주의 운동에 투신했다.
1910년 보성전문학교, 1911년 동덕여자의숙을 인수해 교육 사업에 나섰다.
이후 1919년 민족 대표 33인의 대표로 3·1운동을 주도했다. 선생은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화’ 등 3대 원칙으로 3·1운동을 이끌었다. 선생은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경각심과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정신을 고취했다.
이로 인해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선생은 병보석으로 석방돼 치료를 받다 1922년 5월 19일 향년 61세의 일기로 임종했다.
선생은 1962년 건국공로훈장 중장(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됐다.
제3 월호 청주에서 의암 손병희 선생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청주에서 의암 손병희 선생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북이면 금암리 ‘손병희선생유허지’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금암리엔 ‘손병희선생유허지’가 있다.
충청북도는 지난 1979년 선생의 생가를 기념물 30호로 지정했고, 옛 청원군은 지난 2000년 선생의 생가를 복원(원형보존)하고 동상을 세워 손병희선생유허지를 조성했다. 손병희선생유허지의 입구 격인 홍살문으로 들어서면 넓은 잔디광장이 펼쳐진다. 잔디광장을 지나면 선생의 동상과 생가, 사당, 유물전시관을 볼 수 있다. 동상은 왼손을 가슴에 얹고 오른손은 독립선언문을 들고 곧게 선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생가는 전면 4칸, 측면 1칸 반의 작은 초가집 형태로 복원됐다. 생가 뒤편의 사당은 외삼문과 내삼문으로 드나들 수 있다. 사당엔 ‘의암영당’이라는 현판이 걸렸다.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인 ‘의암정’, 태극 모양으로 만들어진 공원도 볼 수 있다. 유물전시관엔 3·1운동 그림을 배경으로 선생의 흉상이 서 있다. 유물전시관은 총 3실로 구성됐다. 1실엔 청주의 항일운동과 인물에 대한 자료가 전시됐다. 2실엔 손병희 선생의 유품들이 전시됐다. 3실은 영상실이다. 손병희선생유허지는 월요일 휴관이다.
상당구 수동 ‘삼일공원’
청주시 상당구 수동 ‘삼일공원’엔 충북 출신 3·1운동 민족대표 5명의 동상이 서 있다. 손병희 선생의 동상은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선생의 동상과 함께 동오 신홍식 선생, 우당 권동진 선생, 청안 권병덕 선생, 은재 신석구 선생의 동상이 나란히 서 있다. 선생들의 동상은 태극기와 3·1운동의 모습이 장엄하게 펼쳐진 조각이 둘러싸고 있다. 동상 인근엔 횃불 조각상이 있다. 조각상의 하단엔 충북 지역의 3·1운동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독립운동기념비와 태극기를 펄럭이며 전진하는 독립투사들의 장엄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제3 월호 의암 손병희 선생은 소파 방정환 선생의 장인(丈人)
의암 손병희 선생은 소파 방정환 선생의 장인(丈人)
1923년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1899~1931) 선생은 손병희 선생의 셋째 사위다. 방정환 선생은 1917년 손병희 선생의 셋째 딸인 손용화씨와 결혼했다.
부친의 사업실패로 어려움을 겪던 방정환 선생은 손용화씨와 결혼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방정환 선생은 손병희 선생의 도움으로 1918년 보성전문학교 법과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갔다. 방정환 선생은 3·1운동 당시 비밀리에 독립선언문을 인쇄·배포하다 발각돼 고초를 겪기도 했다.
방정환 선생은 1921년엔 김기전과 함께 ‘천도교 소년회’를 만들어 전국 순회강연을 했다. 1923년엔 어린이 잡지인 월간 ‘어린이’를 창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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