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동헌

문화생활 문화역사유적지 청주동헌

청주동헌은 조선시대 청주목사가 집무하던 관아이다.
1982년 12월 17일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09호로 지정되었으며, 상당구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동헌은 감사(監司) 또는 수령(守令)이 공무를 집행하던 관아의 중심건물을 말한다.

  • 조선시대 동헌 입구

    <조선시대 동헌 입구>

  • 일제강점기 청주군청

    <일제강점기 청주군청>

  • 현재 동헌_전면

    <현재 동헌 - 전면>

  • 현재 동헌_후면

    <현재 동헌 - 후면>

청주동헌(淸州東軒) 소개

동헌(東軒)이란 조선시대 지방관들이 정무를 집행하던 관아건물이다. 청주동헌은 효종 7년(1656년) 5월 24일 목사(牧事) 심황이 10칸 규모로 창건하고 근민헌(近民軒)이라 하였으며, 이후 영조 8년(1732년)에 목사(牧事) 이병정(李秉鼎)이 중수하고 순조25년(1825년) 청주목사(淸州牧事) 이덕수(李德)가 28칸 규모로 크게 중창하고, 이름을 청녕각(淸寧閣)으로 바꾸었다. 또한 이 건물의 처마에 장식된 암막새기와에 “도광5년을유5월일(道光五年乙酉五月日) 청주아전개건(淸州衙前改建) 와조작(瓦造作)”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순조 25년(1825)에 전면적으로 개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 7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으로 되어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벽과 내부를 개조하여 청주군청과 청원군청의 사무실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2008년 해체보수를 하여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율곡선생수식송비석

율곡선생수식송(栗谷先生手植松) 비석 소개

조선중기 대학자이며 임진왜란 이전 10만양병설을 주장한 정계의 거두 율곡 이이(1536년~1584년)선생이 청주목사(1571년 6월 ~ 1572년 3월)로 임기를 마치고 떠나면서 그 의미를 새기고자 동헌 앞에 직접 소나무를 심었으며, 이를 기념하여 후임 목사가 1886년에 비석을(오른쪽) 세웠다. 참혹한 전란(6.25 전쟁?)으로 율곡선생이 심은 소나무가 말라죽자 1958년 서정국 청원군수 (6대 - 1952.11.13. ~ 1956.09.20., 8대 - 1957.12.26. ~ 1960.05.12.)가 그 뜻을 기리고자 소나무 한그루를 다시 심고, 표석을(왼쪽)을 세웠으며, 1978년 청원군청사를 신축하면서 동헌 앞에서 정문 담장 밑 화단으로 옮겼다고 한다. 현재는 그 소나무도 없어지고, 2001년 이원종 충청북도지사의 방문식수 소나무가 있다.

비석 내용

율곡선생수식송비석 - 율곡선생님이 직접 심은 소나무 송정기원 후5 병술년 세움
  • 崇禎紀元後五丙戌(숭정기원후오병술)
    • 청나라 연호로 광서12년(덕종)이며, 조선 고종 23년인 1886년을 말하는 것으로서, 숭정은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제16대 의종의 연호, 숭정연간이라고 하면 의종의 재위기간이 1628년~1644년이 되며, 기원후라는 것은 1645년부터는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존재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기록에는 반드시 청의 연호를 사용해야 하지만, 비문 등 비공식 문건에는 당시 상존하는 청나라에 대한 반감으로 청의 연호를 거부하고 명의 연호를 사용하여 숭정기원 후 몇몇 년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많았음. 숭전기원 1628년에서 첫 병술년 1646년 다섯 번째 병술년은 1886년.

표석 내용

율곡선생수식송표석 - 율곡선생이 심은 소나무는 덕화를 전하는 공적이라 곧은 마음과 절개가 높은 선생유품으로 이 소나무가 자랑스럽게 있어서 모든 사람이 우러러 받들더니 참혹한 전란을 당해 포격의 화상으로 인하여 스스로 말라죽어 태연히 표석만 남아있구나 저는 재주가 부족해 뜻을 굽혔으나 다시 군수로 부임하여 선생의 유적을 대하니 북받쳐오르는 그리움과 견딜 수 없는 개탄스러움에 대신 한그루의 소나무를 심고 표석을 만들어 세우니 이후 거듭거듭 백세 청풍하리라

역사적 교훈

조선시대는 사대교린이란 대외정책으로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우리의 문화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을 왜소국으로 취급하였으나, 국론분열과 국방을 소홀히 하여 임진왜란으로 초토화되고 다시 일제 36년동안 국권을 상실한 치욕에 역사를 안게 되었다.

일제는 청주동헌의 위상과 역사의식을 없애기 위해 동헌 바로 앞에 청주군역소(청주군청)을 지었고, 해방 후에도 일제의 잔재는 우리 곁에 늘 존재해 있어 우리의 정체성 확립에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해방 후 청주군청으로 사용하다가, 그 자리에 다시 현대식 청원군청을 건축하였으니...
역사의식의 빈곤치고 대단하지 않는가?
동헌은 말한다. 내 위상을 찾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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