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조선 중기 선조 때 선비인 교하노씨交河盧氏의 4형제 노계원盧系元·노준원盧俊元·노종원盧從元·노일원盧一元의 위폐를 모신 사당과 사적비이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의 기록에 따르면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이 영남에 갔다가 상경하는 길에 4형제를 찾아가 만나보고 그들의 남다른 우애와 효성이 지극한 것에 감탄하여 선조에게 말씀드리니 선조가 친히 ‘체화당棣華堂’이란 글씨를 써서 그 집에 걸도록 하였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때 집이 소실되어 1701년(숙종 27)에 후손들이 남일면 가산리에 사당을 세우고 체화당사라고 이름하였으며, 1719년(숙종 45)에는 그 옆에 체화당 사적비를 건립하였다. 사당은 1813년(순조 13)과 1850년(철종 1)에 중수하였으나 1871년(고종 8)에 철폐되었다. 그 뒤 1967년에 후손들이 지금 있는 자리에 사당을 다시 짓고 사적비도 옮겨 놓았다.
체화당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전면 반 칸은 외진으로 구성하고, 외진칸 상부에는 퇴보를 걸치고 연등천장으로 마감하였다. 2단의 높은 기단 위에 8각으로 가공된 다듬은돌초석을 놓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이익공 형식이며, 가구형식은 2고주5량가이다.
사당 앞에 있는 사적비는 1719년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이우겸이 짓고 성영이 썼다. 방형의 받침석 위에 비신을 올렸으며 그 위에 구름문을 조각한 덮개돌을 얹었다.
사당 건물은 건립된지 오래되지 않았으나 사적비를 통하여 현대인에게 효우孝友의 중요성을 일깨워줄 수 있는 교육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