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이 비(碑)는 1982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속칭 산직(山直)마을의 공동우물터에서 빨랫돌로 쓰여 왔던 것을 주민의 신고에 의해 충북대학교와 충청북도가 조사하여 통일신라시대 청주 지방의 어떤 사찰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사적비(寺蹟碑)로 확인되었다. 앞 ・ 뒷면은 15행(行) 17~19자(字), 한쪽 앞면은 3행 19자의 글자가 북조풍(北朝風)의 전형적인 해서체(楷書體)로 새겨져 있으며 비의 크기에 견주어 글자가 큰 편이다. 이 비는 마모가 심하여 전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불법(佛法)을 찬양하고 임금의 덕을 칭송하며, 삼국통일의 위업을 기리는 호국불교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절의 창건에 관련된 내용이 많다. 특히 아간(阿干), 보혜(普慧), 해심법사(海心法師) 등 관직명(官職名)과 승려(僧侶)의 이름이 보이고 수공(垂拱) 2년의 연호가 있어 통일신라 신문왕 6년(686)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 비는 685년 청주지방에 신라 5소경(新羅 五小京)의 하나인 서원경(西原京)의 설치와 관련지어 볼 때 청주가 행정 ・ 군사 ・ 문화적 중심지였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비의 규모는 높이 92cm, 너비 91cm, 두께 15~20cm로서 재질은 화강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