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이야기
청주이야기
![대[청주 상당산성(淸州 上黨山城)]+사진1](/DATA/clturCntnts2019/20210504052037727.jpg)
![대[청주 상당산성(淸州 上黨山城)]+사진2](/DATA/clturCntnts2019/20210504052037739.jpg)
![대[청주 상당산성(淸州 上黨山城)]+사진3](/DATA/clturCntnts2019/20210504052037742.jpg)
![대[청주 상당산성(淸州 上黨山城)]+사진4](/DATA/clturCntnts2019/20210504052037749.jpg)
![대[청주 상당산성(淸州 上黨山城)]+사진5](/DATA/clturCntnts2019/20210504052037756.jpg)
소개
상당산성(上黨山城) 백제(百濟)의 상당현(上黨縣)에서 유래된 이름인 듯하며, 둘레가 4.2km, 높이 3~4m, 내부 면적 727,273㎡(220,000평)의 거대한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최초의 정확한 축성 년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 원정공(元貞公)이 서원술성(西原述城)을 쌓았다는 기록과 『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金舒玄將軍)이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상당산성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청주목(淸州牧) 고적조(古蹟條)에 <고상당성(古上黨城)>은 율봉역(栗峯驛)의 뒤에 있고 석축(石築)으로 둘레가 7,773척(尺, 2,600m정도)인데 성 안에 큰 연못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상당산성은 임진왜란 중인 선조 29년(1596)에 일부 수축된 이후, 숙종 42년(1716)에서 45년까지 충청도병마절도사(忠淸道兵馬節度使) 유성추(柳星樞)의 감독으로 대대적인 성벽 개축이 이루어졌고, 이듬해 성 내에 구룡사(九龍寺)와 남악사(南岳寺)의 2개 사찰과 암문(暗門)이 마련되었는데 이것은 성문 무사석(武砂石)의 기록에 남아 있다. 그 후 여러 번의 수축이 이루어져 성 내의 여러 시설인 관아사(官衙舍), 군기고(軍器庫), 수구(水口), 장대(將臺), 포루(砲樓) 등이 완성되었다. 현재 상당산성에는 동문(진동문(鎭東門))․서문(미호문(弭虎門))․남문(공남문(控南門))의 3개문과 동암문・남암문의 2개 암문(暗門), 치성(雉城) 3개소, 수구(水口) 3개소가 있는데, 1977년부터 1978년까지 정비공사로 동・남문루와 서문이 재건 되었고, 1992년 말에는 동장대(東將臺)도 재건 되었다. 또한 1995년도의 발굴조사로 서장대(西將臺)의 규모(15평)와 위치가 확인 되었으며, 2014년 서장대(西將臺)가 복원되었다. 현재의 저수지는 본래의 수문(水門)이 홍수로 없어진 후 1943년에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