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최명길(崔鳴吉, 1586~1647)은 인조(仁祖) 때의 문신(文臣)으로 영흥부사 기남(起南)의 아들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호(號)는 지천(遲川), 시호(諡號)는 문충(文忠)이다. 선조(宣祖) 38년(1605)에 문과에 급제한 후, 많은 요직을 두루 거쳤다. 광해군(光海君)이 모후(母后)를 유폐(幽閉)하고 정치가 날로 어려워지자 김류(金流), 이귀(李貴) 등과 뜻을 합해 인조를 영립(迎立)했으며 그 공으로 1등공신이 되고 완성군(完城君)에 봉해졌다. 병자호란(丙子胡亂)때는 청나라와 화친(主和論)을 계속 주장하여 청(淸)나라에 항복하는 역사의 비운을 겪었다. 이때 그는 흩어진 정사를 잘 정리하여 국내 · 외가 점점 안정되도록 하였고, 영의정(領議政)에 이르렀다가 죽었다. 성리학(性理學)과 문장(文章)에도 뛰어나 일가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글씨에 있어서는 동기창체(董基昌體)로 유명했다. 저서(著書)로는 지천집(遲川集) 19권, 경서기의(經書記疑), 병자봉사(丙子封事) 등이 있다. 최명길의 묘소 앞에 있는 이 신도비는 숙종(肅宗) 28년(1702)에 세워졌고, 1980년에 비각을 신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