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이 신도비는 조선 선조(宣祖)때의 문신이었던 신중엄(申仲淹, 1522~1604)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묘소 입구에 세운 것이다. 비문은 광해군 1년 (1609)에 심희수(沈喜壽)가 짓고 이산뢰(李山賚)가 글씨를 써서 광해군 11년(1619)에 세웠다. 신중엄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계모와 동생을 성(誠)과 효(孝)로써 극진히 받들어 그 효행이 널리 알려졌다. 벼슬길에 올라 주부(主簿), 감찰직(監察職)에 있을 때는 군민(郡民)을 교화로 인도하였고, 임진왜란(壬辰倭亂)때는 군량미 부족으로 어려움이 많은 것을 알고 자신의 재산으로 군량미를 조달하는 등 국난대처에 노력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제수하였다. 그가 80세가 되니 조정에서는 다시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의 벼슬을 내리고 죽은 후에는 좌찬성(左贊成)이라는 벼슬을 받았다. 1655년(효종 6년) 건립하였으며, 비신의 높이는 148㎝, 너비 71㎝, 두께 24㎝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