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박훈 신도비(朴薰 神道碑)는 조선시대 일반형 중 큰 석비(石碑)이다. 박훈(朴薰, 1484~1540)은 조선전기의 유학자로서 홍문관(弘文館) 교리(校理) 증영(增榮)의 아들이다. 연산군(燕山君) 10년(1504)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후 여러 벼슬을 거치다가 중종(中宗) 14년(1519)에 현량과(賢良科)에 급제하고 승정원(承政院) 동부승지(同副承旨) 등을 지냈다. 그러나 기묘사화(己卯士禍, 1519)때 화를 당하여 17년간 유배생활을 하다가 중종 31년(1536)에 풀리어 그의 외가(外家)가 있는 이곳에서 말년을 지냈다. 신도비는 영조 24년(1748)에 박필주(朴弼周)가 글을 짓고 윤득화(尹得和)가 비문을 썼다. 후면에는 성운(成運)이 찬한 묘문(墓文)을 새겼다. 1957년에 정면 1칸, 측면 1칸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으로 된 비각을 건립하였다. 비의 형태는 일반형으로 비신(碑身)과 대석(臺石) 개석 모두 양질의 화강암으로 조성되어 보존 상태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