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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로 고고씽~ 청주 시티투어

  • 보고싶고, 즐기고 싶은 둘러볼래
    매주 토요일 1일 1회

    KTX오송역(가경터미널) →
    한국교원대교육박물관 → 육거리시장(중식) →
    문의문화재단지 → 청남대 →
    KTX오송역(가경 터미널)

  • 청주 인기관광지만 골랐다! 알아볼래
    매주 일요일 1일 1회

    KTX오송역(가경터미널) →
    문암생태공원(정북동토성) → 고인쇄박물관 →
    용두사지철당간(중식) → 청남대 →
    KTX오송역(가경 터미널)

  • 내 맘대로 떠나는 우리동네 한바퀴
    매주 화~일요일

    사전 신청 필수 :
    내국인 30명, 외국인·협약기관 등  20명 이상

    테마형, 체험형, 체험·테마형 등 보조사업자 또는
    관광수요자 요구반영하여 자율코스 운영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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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최명길 묘소(淸州 崔鳴吉 墓所)]+사진1
[청주 최명길 묘소(淸州 崔鳴吉 墓所)]+사진2
[청주 최명길 묘소(淸州 崔鳴吉 墓所)]+사진3
[청주 최명길 묘소(淸州 崔鳴吉 墓所)]+사진4
청주 최명길 묘소(淸州 崔鳴吉 墓所)
  • 위치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 253-3
  • 요약정보 기념물 1984.12.31

소개

조선 중기 문신 최명길(崔鳴吉, 1586〜1647)의 묘소이다. 최명길은 본관이 전주(全州)이고, 자는 자겸子謙, 호는 지천(遲川)·창랑滄浪이다. 일찍이 이항복李恒福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05년(선조 38)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1614년(광해군 6) 폐모廢母사건에 연루되어 파면되었으며, 그 뒤 1623년 인조반정에 가담,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이 되어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에 봉해졌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청나라와의 강화講和가 불가피함을 역설하여 이로부터 강화가 논의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일찍부터 척화론斥和論 일색의 조정에서 홀로 주화론主和論을 펴 극렬한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결국 정세가 결정적으로 기울어져 다음 해 정월 인조가 직접 나가 청 태종에게 항복하였다. 청나라 군대가 물러간 뒤, 그는 우의정으로서 흩어진 정사를 수습하는 데 힘을 쏟았다. 1640년(인조 18) 사임했다가 1642년 가을에 다시 영의정이 되었다. 이후 조선의 반청反淸적인 움직임이 알려져 청나라에 불려가 있다가 1645년(인조 23)에 귀국하여 계속 인조를 보필하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성리학과 문장에 뛰어나 일가를 이루었으며, 저서로 『지천집遲川集』과 『지천주차遲川奏箚』 등이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최명길의 묘역 안에는 3기의 봉분이 있는데 이 중, 중앙에 위치해 있는 것이 최명길의 묘소이다. 봉분 주위에 높이 20〜50㎝의 화강암으로 된 호석(護石)을 둘렀고, 묘 앞에 상석(床石)과 묘표(墓表)가 있다. 상석의 규모는 170×96×29㎝이며, 묘표의 규모는 54×134×15㎝이다. 묘표는 남구만(南九萬)이 글씨를 썼다. 상석 앞에 배열된 망주석과 문인석은 화강석으로 높이 160㎝ 정도이며 약간 마모되었다. 묘 앞 500m 지점에는 숙종 때 세운 최명길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의 규모는 비신 106×268×36㎝이고 전체높이 4m의 대형비석이다. 최명길 신도비는 묘소와는 별도로 충청북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1978년에 보호각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