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1661년(현종 2) 지방 유림의 공의로 조헌(趙憲)·한일휴(韓日休)·신지익(申之益)·송국헌(宋國憲)·연최적(延最績)·지여해(池汝海)·이동형(李東亨)·변상회(卞尙會)·신영식(申永植)·박문고(朴文古)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94년(숙종 20년)에 문열공(文烈公) 봉상시첨정(奉常寺僉正) 중봉(重峰) 조헌(趙憲, 1544~1592) 선생을 주향하고, 별좌(別坐) 월포정(月浦亭) 한일휴(韓日休, 1542~1614), 부사(府使) 지여해(池汝海, 1591~1636), 참봉(參奉) 양일당(養一堂) 신지익(申之益, 1596~1640), 도사(都事) 사익재(四益齋) 변상회(卞尙會, 1600~1662), 찰방(察訪) 안소당(安素堂) 송국헌(宋國憲, 1615~1689), 병암(屛巖) 신영식(申永植, 1625~1694), 사우당(四友堂) 이동형(李東享), 범촌(凡村) 박문고(朴文古), 의민공(毅愍公) 감찰(監察) 치당(癡堂) 연최적(廷最績, 1663~1693)을 배향한 서원으로 원생(院生) 15명과 자모생(自募生) 15명을 두었다. 그러나 1871년(고종 8년)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철폐되었다. 지금의 서원은 1958년에 중건하고 용애(龍崖) 신응태(申應泰)를 추향하였으며, 1960년에 중수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내부는 통칸 양회방에 분합문을 달고 앞퇴를 두었으며, “충효사”(忠孝祠)라는 편액을 걸었고, 마당 앞에 “검암서원(儉巖書院)”이라는 현판을 달은 삼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중앙의 신문(神門)과 양옆의 협문(挾門) 등이 있다. 사우에는 조헌을 주벽으로 10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3월 중정(中丁)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7변(籩) 7두(豆)이다. 재산으로는 대지 300평과 전답 1,400여 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