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월리사 대웅전은 1657년(효종 8년)에 명현당(明玄堂) 원학대사(元學大師)가 이웃에 있던 신흥사(新興寺)를 옮겨 지은 것으로 사적비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처마 끝에 장식된 암막새기와에‘옹정경술(雍正庚戊)’이라는 양각 글씨가 있어 1730년(영조6년)에 한차례 중수를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건축양식으로 보아서도 조선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데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다포식이다. 자연석으로 높게 쌓은 기단 위에 자연석의 주초석을 사용하였는데 우주(隅柱)가 평주(平柱)보다 훨씬 굵고 높다. 처마는 겹처마로 앞면의 양쪽 끝에는 활주를 세워 하늘을 향해 날아갈 듯이 반전한 추녀 끝을 받치고 있어서 팔작지붕 건물에서 보이는 한국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대웅전 내부의 내목도리 윗벽, 포벽, 반자, 대량은 신선, 선승, 동자 등의 모습이 담긴 벽화로 장엄하게 되어있는데, 벽화로서 상당한 수준이고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대웅전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힌다. 그리고 이들 지리지에 있는 문의현(文義縣) 고지도(古地圖)에 월리사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월리사(月裡寺) 입구의 왼쪽 언덕에 부도(浮屠)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장방형(長方形)에 가까운 자연석을 가로 170cm×세로 100cm로 다듬고 중앙에 홈을 마련한 비좌(碑座) 위에 너비 83cm× 높이 152cm×두께 24cm의 비신(碑身)을 세운 다음, 가로 110cm×세로 68cm×높이 52cm의 팔작지붕형 개석(蓋石)을 덮은 조선후기 일반형 석비이다. 월리사를 중건하고 나서 그 사적을 새긴 비석으로 비액(碑額)에는 자경(字徑) 9.5cm의 전서(篆書)로 “월리사사적비기(月裡寺事蹟碑記)”이라 쓰여 있으며, 비문(碑文)은 자경(字徑) 5cm의 해서체(楷書體)로 문의현령(文義縣令) 윤동형(尹東衡)이 기(記)하고 덕촌거사(德村居士) 오익기(吳益基)가 서(書)하여 현종(顯宗) 6년(1665) 냉절(冷節, 寒食節)에 세운 것으로 명기(銘記)되어 있다. 배면(背面)에는 시주자(施主者)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2015년 4월 17일 청주시의 향토유적 제42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