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공으로 1604년(선조 37년)에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되고 연원군(延原君)에게 봉했다가 연원부원군(延原府院君)에 진봉된 형조판서(刑曹判書) 해고(海皐) 이광정(李光庭, 1552~1627)과 그의 현손으로 연릉군(延陵君)에 습봉된 이조판서(吏曹判書) 이우당(二憂堂) 이만원(李萬元, 1651~1709)의 두 영정을 봉안한 연안이씨(延安李氏) 문중의 사당이다. 1980년에 대청댐 공사로 영당이 수몰되게 되자 후곡리 후곡마을에서 현 위치인 탄현마을로 이전하였다. 이광정의 영정은 관복을 입은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 가로 99㎝, 세로 164㎝의 설채견본이다. 배면(背面)에 적힌 화상기(畵像記)를 통하여 1609년(광해군 1년)에 인목대비(仁穆大妃) 책봉의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갔을 때 원승광(袁承光)이 그린 57세 때의 초상화임을 알 수 있다. 이만원의 영정은 역시 관복을 입은 전신교의좌상으로 가로 85㎝, 세로 166㎝의 설채견본이다. 지금의 영정은 1779년(정조 16년)에 매선당(每善堂)이 개모한 것으로서 대전에 사는 증손인 이상희(李尙熙) 씨가 보관하고 있다. 지금의 영당은 1980년에 해체, 복원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대청에 분합문을 달고 좌우에 3칸의 온돌방과 1칸 반의 부엌을 앞으로 배치한 홑처마의 다자 목조기와집이다. 영당에 “이강영당(理江影堂)”이라는 편액을 걸었으며, 마당 앞에 솟을대문을 세우고 둘레에는 담장을 세웠다. 2015년 4월 17일 청주시의 향토유적 제43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