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조선 1787년(정조 11년)에 초계인(草溪人) 도암(道巖) 변익하(卞益夏, 1683~1717)의 효행을 기리어 세운 정려이다. 변익하의 본관은 초계, 호는 도암(道巖)이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화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주위의 칭찬이 자자하였으며 부모의 말씀을 한 번도 거스름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부모님이 병이 들어서는 밤낮으로 기원하며 약을 구하러 백방으로 다녔고, 병환이 위중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시게 하여 소생케 했다고 전해진다. 한겨울 강가에 나가 고기를 잡아다 드리는 등 정성을 다하여 병을 낫게 하였다. 그 후,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묘 옆에 움막을 짓고 슬퍼하며 상복을 입고 음식도 거르며 지내다 병을 얻어 3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효행사실이 알려져 나라에서 정려를 명하여 후세에 길이 전하게 하였다. 지금의 효자각은 1968년에 중건한 건물로 정면 1칸, 측면 1칸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낮은 벽을 쌓은 뒤 홍살로 막고 안에는 효자문 편액을 걸었다. 변익하 효자각은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에 있다. 2015년 4월 17일 청주시의 향토유적 제108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