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대청댐 북쪽에 천험을 이루고 높이 솟은 해발 370.3m의 구룡산(九龍山) 정상에 축조된 테뫼형 석성이다. 이 산성은 문헌기록에 전혀 나타나지 않다가 일제 때의 고적조사자료에 처음 등장한다. 이에 의하면 성이름은 미상이며 토축(土築)의 산성으로서 둘레는 약 400간(間)인데 붕괴되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산성은 토축이 아니라 석축이며, 현재 완전히 무너져서 문지조차 확인이 어려운 실정이다.
성의 평면은 남북으로 비슷한 고도(高度)로 뻗은 능선과 그 동쪽 사면을 연결하여 장타원형(長楕圓形)이 되도록 축성하였는데, 동사면(東斜面)의 155m, 능선 위의 서벽(西壁) 129m, 지맥(支脈)의 남벽(南壁) 82m로서 전체둘레가 366m인 비교적 작은 산성이다. 이 산성은 몇가지 특성이 있는데, 첫째 대개의 산성처럼 능선과 계곡을 포위하여 축성하지 않고 능선과 사면을 이용하여 설축한 점, 둘째 능선에서 같은 높이의 능선 끝에 11m를 남겨둔 채 축성한 점이 그것이다. 문지는 양성산성 방향인 능선의 북단에서 확인되어 양성산성과의 연계를 짐작하게 하며, 이 부근의 문지 안쪽 2m, 능선의 서쪽에서 지름 6m, 깊이 1.9m의 웅덩이가 있어 우물터 혹은 저수고(貯水庫)의 터가 아닌가 생각된다. 유물로는 성의 남동쪽 사면을 약간 삭평한 곳, 즉 폭 4~8.5m의 평지에서 신라계의 적색토기편과 백제계의 토기편과 기와편이 발견된다. 능선과 사면을 이용하여 축성하였으므로 건물이 들어설 평지가 없고, 우물 대신 저수시설(貯水施設) 밖에 없는 점으로 미루어 일종의 보루성(堡壘城)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