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백제 때 상당현(上黨縣)의 치소(置所)나 통일신라 때 서원경성(西原京城)으로 추정되는 성곽으로 청주의 초기 역사에서 주목되는 유적이다.
당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당이산(唐羡山)이라 하고, 주치(州治)의 동쪽 1리 거리에 있는 청주의 진산(鎭山)이라 하였다. 또한 이곳에는 옛 토성터가 있다고 한데서 일찍부터 성터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1980년 토성의 일부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토성의 흔적을 확인하였다.
당산토성은 청주 도심의 동쪽, 와우산(臥牛山)의 남쪽 산자락이 다시 돌출된 낮은 봉우리의 정상부(104.3m)를 감싸고 축조된 테뫼식 토축 산성이다. 이곳에서는 청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와우산과 연결된 동쪽 능선을 제외하면 3면이 가파른 경사면으로 이루어져 있어 험준한 지형을 이루었다. 동서쪽과 동쪽으로는 비교적 완만하게 와우산토성과 연결되었는데, 평탄한 대지가 조성된 곳에 낮은 토루(土壘)가 2중으로 단을 이룬 곳도 있다.
정상에는 건물터로 보이는 넓은 대지가 드러나고, 층단을 이룬 동쪽으로는 민묘(民墓)가 들어서 있다. 정상을 따라 토루가 돌아간 흔적이 뚜렷하다. 성벽의 높이는 대략 1m 정도로, 두께 20㎝ 안팎으로 판축(板築)하였고, 내부에는 돌을 쌓아 성벽을 보호한 시설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처음에는 독립된 작은 산성으로 기능하던 것이 우암산토성(牛岩山土城)의 내외성(內外城)과 연결되면서 나성의 일부로 기능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