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이 산성은 백제측에서 신라와 일시의 국경지대이던 이곳에 백제의 도성이 있던 웅진, 사비로 통하는 수운과 육로의 중간을 차단, 방어하기 위해 설축한 보루와 요새로서 문의 양성산성에 부속된 산성이며, 유사시에 군사가 배치되어 결사항전 하던 요충지로 추정된다. 고문헌에는 전혀 기록이 없다. 해발 165m의 산봉우리를 감싼 둘레 291.6m의 석축산성이다. 북쪽에 치우쳐 장대가 있고 남쪽 봉우리를 감싼 마안형이다. 장대는 발칸포가 들어서면서 콘크리트 구조물이 지금도 남아있으며 등산로 개설로 성벽 단면이 드러나있다. 문필봉에서 뻗어내린 산줄기를 이용하여 성밖의 외적을 차단하기 위한 토루 2곳을 구축하고, 그 능선과 금강변의 절벽단애를 이용하여 내ㆍ외성을 쌓았다. 내성의 지세는 정상부분을 이용하여 둘레 47m의 작은 성보(城堡)를 석축했는데 외성보다 1.5~2.8m가 높은 장대지가 있고, 외성은 둘레 261m 가운데 62m가 석축이며, 199m는 석축이다. 서남쪽의 유존상태가 좋아 토루의 높이 1.2m, 폭 3m를 확인할 수 있으며, 기반에 잡석을 박아 공들여 축성했음을 알 수 있다. 성벽은 완전히 붕괴되어 성밖 경사면으로 굴러내려간 약 7m 폭의 돌무더기만이 확인될 뿐 주변에 무성한 잡초로 인해 우물이나 출토유물 그리고 건물지 등은 확인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