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이야기
청주향교(淸州鄕校)는 조선 태조 때 창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세종 26년(1446)에 세종이 초정(椒井)에 행차했을 때 청주향교에 서적(書籍)을 하사한 일이 있고, 또 세조 10년(1464)에 세조가 청주에 행차했을 때 문묘(文廟)에 친히 제향(祭享)한 일이 있는 삼남(三南, 충청도․전라도․경상도) 제일(第一)의 향교였다. 그 후 숙종 9년(1683) 현령(縣令) 이언기가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고, 그 뒤 여러 차례의 보수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교생(敎生) 90명과 자모생(自募生) 70명, 재직(齋直) 40명, 노비(奴婢) 13명이 있었는데 고종 31년(1894)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문묘의 제사만 하게 되었고, 1910년 이후에는 조선총독부령에 의하여 문묘직원을 두어 관리하게 하였다.
건물의 배치는 전당후묘(前堂後廟)로 내삼문(內三門)을 두어 구획하였는데 문묘에는 대성전(大成殿)을 중심으로 6동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반의 맞배지붕 단층목조이고, 그 좌・우에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를, 앞에 내삼문을 두고 그 앞에 정면 5칸, 측면 3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단층목조의 강당(講堂)인 명륜당(明倫堂)과 외삼문(外三門)이 서향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중 서무는 1981년 신축된 것이다.
대성전에는 공자(孔子)를 주향(主享)하고 그 양편에 4성(四聖, 안자, 증자, 자사, 맹자)을 배향하고, 동벽에는 최치원, 정호, 정이,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송준길 서벽에는 설총, 주돈이, 주희, 정몽주, 정여창, 이언유, 김인후, 성혼, 조헌, 송시열, 박세채를 종향(從享)하고 있다. 매년 봄․가을(春秋)로 석전제(釋奠祭)를 지내고 있으며, 한문, 전통 예절 등의 시민 교양·교육과 전통 혼례식장으로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