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대한제국 광무 2년(1898)에 진천 양호사(陽湖祠)에 봉안했던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 문충공(文忠公) 문하시중(門下侍中) 익재(益齋) 이제현(李齋賢, 1278~1367)의 영정을 이곳으로 이전· 봉안한 경주이씨(慶州李氏)의 사당이다. 이제현(李齋賢,1287∼1367)은 고려 후기의 문신·학자·문인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이지공(李之公), 자는 중사(仲思), 호는 익재(益齋)·역옹(櫟翁)이다. 고려 건국 초의 삼한공신(三韓功臣) 이금서(李金書)의 후예로 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이진(李瑱)이다. 매년 음력 3월 15일과 9월 9일에 향사한다. 영정은 고려 충숙왕 6년(1319)에 원(元)나라의 오수산(吳壽山)이 그린 이제현의 초상화를 후대에 모사한 것이다. 선비 복장을 한 반신상으로 그렸으며, 가로 49㎝ 세로 93㎝의 설채견본(設彩絹本)이다. 이 영정은 원나라 화가가 그린 것이지만 구도가 안정되고 인물 묘사가 뛰어난 우수한 작품으로 우리나라 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인정하고 있다. 영정의 윗부분에는 유산(楺山)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이 쓴 제기(題記)가 있는데, 이것은 이제현이 고려 충정왕 2년(1350)에 지은 자찬문(自贊文)을 옮겨 쓴 것이다. 지금의 영당은 1971년에 중건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으로 내부는 통칸 마루방에 분합문을 달고 앞 마루를 놓았다. 영당의 앞에는 솟을대문에 세우고 둘레에 담장을 둘렀으며, ‘영모문(永慕門)’이라는 편액을 걸었으며 둘레에 자연석을 품고 기와를 얹은 담장이 둘려 있다. 내부는 통간 마루방에 분합문을 달아 여름에는 통풍을 겨울에는 보온에 주의를 기울였고, 앞 마루를 놓아 실내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확대했다. 마당에는 “서운이필영유적비(西雲李苾榮遺蹟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