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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로 나누고 친절로 베푸는 행복한 용암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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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方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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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형 : 도지정기념물
  • 지정일 : 1990.12.14.
  • 시대 : 시대미상
  • 전화 : 043-201-2024
  • 관리 : 청주한씨종중
  • 주소 : 충북 청주시 상당구 단재로293번길 56
  • 지정번호 : 도지정 기념물 제84호

이 곳은 청주 한씨의 시조 한란(韓蘭)이 살던 곳으로, 어느 해 가뭄이 들어서 농사를 지을수 없게 되자, 한란이 제수를 마련하여 사흘동안 기도를 드리다 쓰러져 의식을 잃었는데, 이때 북쪽에서 장수가 나타나 창끝으로 땅을 찌르니 맑은 물이 콸콸 흘러 나왔다. 한란이 너무 기뻐 소리치다 깨어나 꿈속에 보이던 곳을 파보니 땅속에서 굉장한 양의 물이 쏟아져 나왔다. 한란은 문중 사람들과 합심해서 이곳에 큰 웅덩이를 네모꼴로 파놓고 물을 가두었는데 이후부터 큰 가뭄에도 물이 마르거나 줄지 않았다. 그때부터 이곳이 네모난 샘이 있는 곳이라 하여 방정(方井)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후 고려태조 왕건이 견훤을 토벌하고 이 곳을 지나다, 이 우물에서 십만군사에게 물을 먹였는데 물이 부족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1998년에 우물보호를 위해 뚜껑과 담장을 새로 정비하였다.

무농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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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형 : 도지정기념물
  • 지정일 : 1990.12.14.
  • 시대 : 근 대
  • 전화 : 043-201-2024
  • 관리 : 청주한씨종중
  • 주소 : 충북 청주시 상당구 단재로 273
  • 지정번호 : 도지정 기념물 제85호

무농정지(務農亭址)는 청주를 본관으로 하는 가장 대표적인 씨족으로 널리 알려진 청주한씨와 관계된 유허지이다. 이곳은 청주 남쪽의 넓은 들판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으로, 낮은 구릉 위에 정자를 짓고 농사에 힘쓰도록 권장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왔다.
정자의 옛터는 폐허화되고 숙종 14년(1688)에 후손 한익저가 세운 유허비만 남아 있었는데 1949년 에 후손들이 정자의 옛터에 시멘트로 중건하였다가 1988년 목조로 개건한 것으로 정면 3간, 측면 2 간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와가로서 내부는 우물마루에 난간을 돌렸다.
서쪽에 작은 일각대문이 있고 4면을 담장으로 둘렀으며 앞뜰 좌측에 무농정유허비가 있다. 이 비석은 방단형의 비좌 위에 높이 93.5㎝, 아랫너비 37㎝, 위쪽너비 41.5㎝, 두께 18.5㎝의 둥근 머리 모양이며, 대략의 연혁이 쓰여 있다

청주한씨시조 제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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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형 : 도지정기념물
  • 지정일 : 1990.12.14
  • 시대 : 조선시대
  • 전화 : 043-201-2024
  • 관리 : 청주한씨종중
  • 주소 :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운동로129번길 4-18 (운동동)
  • 지정번호 :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69호

청주한씨 시조 한란(韓蘭)을 제사하기 위하여 제단을 마련하고, 옛터를 잊지 않도록 비석을 세운 것이다. 한란은 고려 초의 개국공신으로 태위,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책록되었던 사람이다. 고조선 준왕의 세 아들 중 우량(友諒)의 후손이라 한다. 조선 선조 38년(1605)에 청주목사 겸 청주진 병마절제사 구암(久菴) 한백겸(韓百謙)이 시조의 유적을 고증하여 찾고, 그의 동생인 호조판서 문익공(文翼公) 한준겸(韓浚謙)이 시조의 내력을 상세히 서술하여 모든 후손들이 제사 때마다 읽고 알 수 있도록 비문을 지었다. 이때에 위토(位土)를 마련하여 제단을 쌓고 담을 둘러 경계를 표시하였다 한다.
비석은 직사각형 비신(碑身) 위에 한 개의 돌로 팔작지붕 모양으로 깎아 만든 옥개를 얹어 놓은 형식이다. 비문은 풍화가 심하여 판독이 어려운 실정이며, 비좌(碑座)는 흙속에 묻히고 비신은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졌다. 17세기 역사지리학의 대가에의해 옛 유허(遺墟)가 고증되어 세워진 비석이란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청주 양수척 효자비(淸州 揚水尺 孝子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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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형 : 도지정기념물
  • 지정일 : 2009.03.06.
  • 시대 : 조선시대
  • 전화 : 043-201-2024
  • 주소 : 충북 청주시 상당구 다리실로 60(운동동)
  • 지정번호 : 도지정 기념물 제145호

조선시대의 효자 양수척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석이다. 방형대석 위에 높이 112cm, 폭 34cm, 두께 23cm의 규모로 세웠다. 비석 전면에 ‘양수척효자비’라고 새겨져 있으며, 비신에 사용된 석재인 화강암이 풍화가 많이 되어 비문을 판독하기 어렵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시대에 운동동(속칭 ‘비선거리’)에 살았던 양수척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원래 천민은 성도 없이 돌쇠, 마당쇠 등으로 불렸는데 성은 천민들의 집단인 양·소·부곡에서 양(楊 )을 따서 양수척 효자비라는 비석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개인집 담장에 바짝 붙어 길거리에 세워져 있는데 풍화로 마모가 심하여 글씨 판독이 매우 어려운 상태이다. 비문은 ‘楊水尺孝子碑󰡑이다. 양수척은 조선시대에 현재의 상당구 운동동 비선거리에서 두 아우와 함께 살았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지 않았고 늙은 어머니에게도 효도를 하지 않았다. 이를 걱정하던 어머니가 드러눕게 되자 고려장을 하려고 하였다고 한다. 이때 남일면 효촌리에 살던 慶大有가 이 소문을 듣고 삼형제를 불러 꾸짖자 양수척 형제는 크게 감화되어 이후 노모에게 효행을 극진히 하였다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어느 날 모친이 중병으로 눕게 되자 청주성으로 들어가 한약을 지어 돌아오는 중에 홍수가 나서 월운천을 건너지 못하고 한탄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천의 물이 갈라져 건너게 되었으며 약을 달여 모친의 병구완을 하였다고 전하여 온다. 천민신분인 사람에게 효자비를 세워준 것은 매우 드문 예로서 시민들의 교육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좋은 유물로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

청주 방서동 고가(淸州 方西洞 古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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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형 : 도지정 문화재자료
  • 지정일 : 2002.08.16.
  • 시대 : 조선시대
  • 전화 : 043-201-2024
  • 관리 : 한월동
  • 주소 : 충북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 197-1번지
  • 지정번호 :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37호

건물은 앞면 4.5칸, 옆면 5칸의 ‘ㄱ’자형 건물로, 88.69㎡(26.83평)의 크기이며, 본채는 앞면에 퇴를 두고, 왼쪽 익랑은 앞뒤로 퇴를 둔 무고주 납도리 오량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앞쪽 기단의 일부 석재는 사랑채에서 가져온 화강석 장대석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외의 부분은 콘크리트로 보수하여 확인이 어렵다. 앞쪽의 디딤돌도 콘크리트에 타일을 붙여 사용하고 있다. 전체적인 구성은 본채 중앙에 2칸의 대청을 두고 양쪽에 방을 들였으며, 오른쪽 앞쪽은 퇴칸에 우물 마루를 깔았다. 왼쪽 익랑은 본채와 연결된 방 하단부에 주방과 욕실이 차례로 연결되어 있고 앞면 퇴의 우물 마루로 각 방이 연결되고 있다. 훼손이 많이 된 상태이나 청주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가옥으로 추정되며, 대들보에 새겨진 상량문(上樑文)에 “숭정후4경신(崇禎後四庚申)”이라는 기록이 있어, 1860년(조선 철종 11)에 건립한 건축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한식 흙기와를 사용하고 있던 지붕의 해체 과정에서 망와에 ‘강희임오(康熙壬午)’란 명문이 확인되어 1702년(숙종 28)에 만들어진 기와가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강희임오’ 명문 기와의 발견으로 상량문의 기록처럼 1860년에 새로이 가옥을 신축하면서 기존에 다른 건물에서 사용되던 기와를 옮겨와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1702년에 만들어진 가옥을 1860년에 고쳐 지은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앞으로 확인해야할 과제이다. 2005년 전면 해체하여 보수·복원하였다.

청주 운곡서원(淸州 雲谷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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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형 : 비지정(유형)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 관리 : 이상갑(경주이씨(慶州李氏)국당공파문중)
  • 주소 : 충북 청주시 상당구 목련로214번길 37-3

1871년(고종 8)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전라북도 남원의 어은사(漁隱祠)에서 모시던 월성군 이청(李亻菁)[1274~?]과 광주의 두암서원(斗岩書院)에 배향된 이감(李堪), 이흘(李忔)[1568~1630], 이필경(李必慶)[1667~?] 등 경주이씨 인물들을 제향하기 위하여 1944년에 경주이씨 국당공파 문중과 청주의 유림들이 세운 사우이다. 1976년에 이종문(李鍾文)[1877~?]을 추가로 배향하여 함께 제향하고 있다. 산록 하단부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어 삼문과 사당을 축대로 쌓아 축조하였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풍판을 달았다. 장대석 기단 위에 평면을 내진과 외진으로 구분하였으며 내진에 3개의 분합문을 달았다. 내진기둥의 초석은 덤벙주초로 하였고, 내부 바닥은 시멘트 바닥으로 되어있다. 외진기둥의 초석은 원형의 정평주초로 하였으며 그 위에 원형기둥을 세웠다. 가구형식은 무고주 5량가이며 공포는 초익공 형식이다. 단청은 검소한 느낌을 주는 긋기단청으로 하였다. 사당 입구에는 삼문을 세웠고, 삼문 밖에는 재실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지북동 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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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형 : 사적
  • 지정일 : 1970.10.1
  • 시대 : 시대미상
  • 전화 : 043-201-2024
  • 관리 : 청주시청 문화예술과
  • 주소 : 충북 청주시 상당구 단재로 439-28(지북동)
  • 지정번호 : 미지정

선돌의 전체 형태는 윗면이 편편한 판자골 형태의 여성선돌로 윗면과 옆면에서 떼임질 자국이 관찰되며, 편편한 앞면이 망르 밖 들판쪽을 향하고 있음 크기는 88*48*30-39이다. 17번국도로 남쪽방향으로 약 500미터지점에 있는 지북방죽에 인접한 남촌마을 진입로를 따라 약100미터지점 마을 어귀 느티나무 아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