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꿈꾸는 어린이 즐거운 상상! 기분좋은 이곳, 청주시어린이홈페이지
직지상징조형물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는 우리 청주에 소재했던 흥덕사에서 1377년 간행되었으며, 독일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구텐베르트 성서보다도 78년이나 앞서 간행되었습니다.

지난 2001년 9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직지는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있습니다.

직지의 명칭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에 금속활자로 간행한 책의 이름은「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이 책의 이름을 줄여서 「불조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 「직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주최한 '책' 전시회에 「직지심경」이라 소개되면서 한때 잘못 불리기도 하였다.

불교에서 '경(經)'은 불교경전을 뜻하는 것이다.
이 책은 엄밀한 의미에서 불경이 아니므로 「직지심경」은 잘못된 표현이다.
여기에서는 판심제(版心題)에 나타나는 가장 간략한 책의 이름으로 「직지」라고 부른다.

직지의 프랑스 소장 경위

직지가 소장된 프랑스 국립도서관

「직지」는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소장되어 있다. 그 경위는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초대 주한대리공사로 부임한 꼴랭 드 쁠랑시(Collin de Plancy, 1853∼1922)가 우리나라에 근무하면서 고서 및 각종 문화재를 수집하였는데, 그 속에 「직지」가 포함되었던 것이다.

「직지」의 수집경로는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으나,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 1865∼1935)이 1901년에 저술한 「조선서지」의 보유판에 게재된 것으로 보아 1900년경에는 이미 수집되었으며, 1911년 드루오호텔에서 경매되었다.

쁠랑시가 우리나라에서 수집해간 대부분의 고서는 모교인 동양어학교에 기증하였다. 그러나 금속활자본 「직지」는 앙리 베베르(Henri Vever, 1854∼1943)가 180프랑에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다가, 1950년경에 그의 유언에 따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었다.

직지가 갖는 의미

직지 이미지

인류는 의사 전달을 위해 네 번에 걸친 정보혁명을 거쳐 발전하였다.
첫 번째로는 몸짓이나 소리에 약속된 의미를 부여하여 의사를 전달한 것을 말할 수 있으며, 두 번째는 각종 부호나 문자를 사용하여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 번째로는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책을 간행한 일이며, 마지막이 컴퓨터의 발명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위대한 혁명은 금속활자의 발명을 꼽고 있다. 그 이유는 활자를 이용하여 책을 간행하여 보급함으로써 정보의 대량 전달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런 정보화의 가장 핵심인 금속활자의 발명이 13세기초에 한국에서 일어났다. 13세기 초에 금속활자로 인쇄한 기록은「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와 「상정예문(詳定禮文)」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1239년에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 전하고 있는데, 여기에 당시 최씨무신정권의 우두머리였던 최이(崔怡)가 원래 금속활자본을 목판으로 다시 새긴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것으로 보아 1239년 이전에 이미 금속활자 인쇄가 진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규보(李奎報)가 1234년에서 1241년 사이에 저술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의하면, 『상정예문』28부를 금속활자로 인쇄하여 각 관서에 나누어주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안타깝게도 기록으로만 전할 뿐 실물이 전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1377년(고려 우왕 3) 7월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한 「직지」는 실물이 전하며, 우리 민족이 13세기 초에 금속활자를 발명한 슬기로운 문화민족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물로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직지」는 인류문명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의 소산인 동시에 오늘날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화시대를 연 증거인 것이다.
인류는 의사 전달을 위해 네 번에 걸친 정보혁명을 거쳐 발전하였다.
첫 번째로는 몸짓이나 소리에 약속된 의미를 부여하여 의사를 전달한 것을 말할 수 있으며, 두 번째는 각종 부호나 문자를 사용하여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 번째로는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책을 간행한 일이며, 마지막이 컴퓨터의 발명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위대한 혁명은 금속활자의 발명을 꼽고 있다. 그 이유는 활자를 이용하여 책을 간행하여 보급함으로써 정보의 대량 전달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런 정보화의 가장 핵심인 금속활자의 발명이 13세기초에 한국에서 일어났다. 13세기 초에 금속활자로 인쇄한 기록은「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와 「상정예문(詳定禮文)」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1239년에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 전하고 있는데, 여기에 당시 최씨무신정권의 우두머리였던 최이(崔怡)가 원래 금속활자본을 목판으로 다시 새긴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것으로 보아 1239년 이전에 이미 금속활자 인쇄가 진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규보(李奎報)가 1234년에서 1241년 사이에 저술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의하면, 『상정예문』28부를 금속활자로 인쇄하여 각 관서에 나누어주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안타깝게도 기록으로만 전할 뿐 실물이 전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1377년(고려 우왕 3) 7월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한 「직지」는 실물이 전하며, 우리 민족이 13세기 초에 금속활자를 발명한 슬기로운 문화민족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물로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직지」는 인류문명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의 소산인 동시에 오늘날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화시대를 연 증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