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덕사지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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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지

발굴 당시 금당지의 동쪽 끝과 남쪽 끝은 파괴되어 그 원형을 알 수 없었으나, 북면과 서면이 잘 남아있어 이를 토대로 건물의 형태를 복원할 수 있었다. 금당지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지로 측면의 중앙킨은 다른 칸보다 넓은 편이다.

기단(基壇)은 원토층이 석비래층 위에 약 117 30 15cm, 37 29 11cm 크기의 화강석을 다듬어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65 67 17cm의 면석(面石)을 놓았음이 확인되었으며, 그 위에 갑석(甲石)을 올려놓은 가구식기단(架構式基壇)으로 추정된다.

주초석(柱礎石)은 굴곡이 심한 부식암반층(腐蝕巖盤層)을 정지(整地)하고 낮은 부분은 진흙다짐을 한 후 주먹 크기의 자갈돌로 적심(積心)을 하고 그 위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금당지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외곽의 주초(柱礎)는 2단으로 양각된 원형주초를 사용하였고 내부는 모두 방형주초를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북면의 중앙에 계단석이 남아있으며 계단 양측에 작은 맷돌을 세웠던 홈이 마련되어 있고 작은 맷돌의 잔편이 금당지 서쪽에서 1개 출토되어 모양이 잘 갖추어진 계단으로 추정되는데 남면에도 있었음이 확실시되나 발굴 전에 이미 파괴되었던 듯하다.

금당지의 기단석 밖으로 석렬을 쌓아 기단 형식의 건물구를 만들었는데, 이는 후에 보수한 건물이라기보다는 건물을 초창할 때의 기단유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금당의 서북편에는 불에 탄 흔적이 남아있고 토층으로 볼 때에도 불을 먹은 층임이 역력히 나타나고 있어 금당은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었음이 확실한 것이다.

강당지

금당지에서 북쪽으로 14.5m 떨어져 있는 곳에 화강석으로 잘 치석(治石)된 기단석렬(基壇石列)이 5.6m 정도 나타나고 있는데 이 곳이 바로 강당지의 남쪽면에 해당된다.

강당지는 현재 남쪽 기단석렬과 적심석(積心石) 일부만 남아있어 강당건물의 규모와 구조는 알 수 없고 금당지와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건축된 초창 당시의 유적임이 확실하다.

고려시대에 중창될 때 강당지는 다시 건축되지 않았으며 서편으로는 상당부분의 다른 건물지가 중복되어 나타나고 있어 현재의 강당지유구는 신라시대의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기단석은 석비례층 위에 바로 올려놓았는데 지반이 낮거나 기단석의 두께가 얇은 부분은 쐐기돌을 박아 수평을 유지시켰다. 기단석렬 위에 60x33x10cm의 면석 1개가 남아있어 강당지 역시 금당지와 마찬가지로 지대석, 면석, 갑석을 사용한 가구식기단으로 생토층(生土層) 위에 바로 지대석을 놓은 양식과 함께 신라시대의 통상적인 양식이다.

적심은 현재 앞 열에 3기와 중간 열에 1기가 남아있다. 북쪽의 뒤 열은 지표면이 후대의 경작 등으로 낮아져서 유실되었다. 강당의 건물구조는 대략 정면 3칸에 측면 2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회랑지

금당지에서 서쪽으로 1.4m 지점에 서회랑지의 동면기단축대가 나타나있어 서회랑지는 금당지와 매우 인접해 있는 편이다.

남북의 길이는 45m, 동서폭대(東西幅臺)는 5m인데 회랑지는 직선형으로 길게 이어져 정면 13칸, 측면은 1칸을 이루고 있다. 이 서회랑지는 초석과 기단 및 고막이 등의 상태로 보아 3구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금당지 앞뜰의 서편인 회랑의 남쪽부분(Ⅰ구역)과 금당 서편과 인접한 중간부분(Ⅱ구역)과 그 북부지역(Ⅲ구역)에 약간의 차이가 보인다.

즉, Ⅰ구역의 4칸은 특별한 시설이 없으나 Ⅱ구역의 6칸은 금당과 통하는 문지(門址)와 같은 시설이 보이고 있고 Ⅲ구역의 3칸은 기단 폭이 넓어져 있다. 또한, 고막이의 형태로 보아 회랑지는 각 구역마다 특별한 시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토층으로 볼 때 역시 2-3회의 중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건물지

강당지 서편에 있는 작은 건물지는 정면과 측면이 모두 2칸씩이며, 바닥에는 전(塼)을 깔았다. 강당지의 서편에 있으면서 강당지와 3중으로 겹쳐져 있는 것으로 보아 후대의 건물임이 분명하며, 이 일대에서 출토된 와당의 문양도 금당지나 회랑지의 유물들과 확연히 구별되어 흥덕사지의 마지막 건물지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건물지가 강당지 동편에도 있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는데, 그것은 택지조성사업에 의한 훼손으로 말미암아 건물지의 성격을 규명해내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건물지와 달리 바닥에 전(塼)을 깔고 있어서 특별한 용도의 작은 건물지임이 분명한 곳이다.

따라서, 「직지」와 「자비도량참법집해」의 간행에 사용된 금속활자와 인출도구 등의 인쇄관련 공방이었거나 기타의 경판(經版)을 보관했던 경판각(經版閣)이 아니었을까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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