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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RE:금속 활자본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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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내용 |
고려는 몽고 전쟁이 시작 된 1235년. 금속 활자로 "삼정고금예문"을 인쇄하게 됩니다. 그러나 현존하지는 않습니다. 기록으로 인해 전해지게 되지요. 그 외에도 프랑스에 있는 "직지 심체 요절"은 구덴베르크보다 70년 정도 앞서 있지요. 그러나 역시 인정 받지 못합니다. 아마 그 이유는 서양 중심의 역사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서양은 우리나라의 존재를 중국보다 한참 이후에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서양화 되면서 역사 또한 서양 것을 많이 참고 하게 되지요. 서양에는 금속활판이라 해서 서양에서 구덴베르크가 최초로 만든 것이라 합니다.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에서 금속활자를 만든 것은 참고 안하더군요... 일부는 참고 할 지 몰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다른 서양과 교류가 많이 늦었습니다. 그래서 늦게 발명할 금속활판을 서양 것이라 하여 유럽 전역에 보급 시키게 됩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있었지만 그들이 우리의 금속 활자를 모르지요. 우리나라는 금속 활자는 왕실에서 많이 쓰였습니다. 민간 층에서는 돈이 부족하여 금속 활자 보다는 시간이 오래걸리고 낭비가 심한 목판을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즉 보급이 늦은 것도 일이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금속활자가 있는 것을 모르며 금속활판이라 하여 서양에서 구덴베르크가 발명했다고 하지요. 우리나라는 금속활자는 200년 정도 앞섰지만 금속활판은 일제 강점기때 들어오게 됩니다. 그 외에도 이유가 있다면 인류에 직접적으로 끼친 영향입니다. 구덴베르크의 금속활자는 서양에 종교 개혁을 원동력으로 서양의 산업 혁명을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컴퓨터나 그런 것이 많이 만들어 지게 되지요..... 그러나 우리나라의 금속활자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발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가치는 인류학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여 구덴베르크의 금속활판에 거의 밀리는 실정입니다.. 인류 문화적 영향은 많이 부각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금속활자는 동양에 큰 영향을 끼치지만 지금 거의 서양 강국은 자신들과 상관 없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금속 활자는 그리 크게 부각되지 않습니다. 참고로 활판은 잉크나 그런것이 또 준비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금속 활자는 인쇄를 하는 기술이고요.. 이외에도 우리나라가 먼저인데도 서양이 먼저인 것으로 알려진 많습니다. 천문학도 그것이죠.. 우리나라는 이미 수십배로 발달되어 있지만 서양이 더 주목받고 있습니다. 천문학은 우리나라 천문학이 더욱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과학을 대대적으로 발달 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기존의 뛰어난 기술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더 이상 발전시키지는 못했지요... 서양은 후천적으로 기술을 가져, 그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산업혁명"을 이루어낸 것이지요... 우리나라가 서양의 금속활판보다 앞서다는 것은 기간 뿐만이 아닙니다. 구덴베르크는 돈을 벌기 위해서 금속활판을 발명, 성서를 찍어냈지만 우리나라의 금속활자는 학술적 발달을 위해 만들었습니다. 삼정고금예문,직지심체요절 불교에 관한 것입니다. 즉 불교에 대한 학승의 공부를 위하여 만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조선때 계승되어 여러 서적이 금속활자로 찍어 내려오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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