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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저기여 궁금한게 있어요. 작성자, 내용, 파일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제목 RE:저기여 궁금한게 있어요.
작성자 관리자
내용 직지는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뒤 승려와 당대 권력자인 최씨 무신 정권의 실세에게 진상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숭유억불(崇儒抑佛)의 조선조
500년을 지나면서 이중 대부분이 없어졌고 일부만 사찰과 일부 가문에 전해 내려왔습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직지의 존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주한 프랑스 초대공사인 콜랭 드 플랑시(1853∼1922)였는데. 중국어를
전공한 플랑시는 중국에서 8년간 통역관으로 근무한 중국통이었습니다.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아 한국 부임 뒤에는 공사관 앞에 고서를 산다는 방을
써 붙일 정도로 책 수집에 열중했고. 마침 프랑스 정부는 1872년 국립동양어학교의 건의를 받아들여 각국에 파견 나간 외교관에게 서적 기증을
의무화했습니다. 플랑시는 국가의 지원과 독려 속에 고서를 무더기로 수집하고 이중 600권을 기증하기에 이릅니다.

직지는 이런 와중에 플랑시의 손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지만 플랑시가 언제,어디서 직지를 만났는지는 사실 확실치 않습니다. 주한 프랑스 공사였던
플랑시는 고종 황제를 비롯한 고위직 대신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을 것이니 이들로부터 직지를 기증받았거나 혹은 노전에서 헐값에 구입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플랑시가 직지를 입수했을 때 이미 직지는 상권이 없고 하권도 첫번째 쪽이 사라진 상태였는데. 그는 직지의 가치를 직감한 것으로
보입니다. 직지를 입수한 뒤 표지에 “1377년 인쇄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고 펜으로 기록했다.

모리스 쿠랑의 ‘한국서지’에 앞서 직지가 존재를 드러낸 것은 1900년 파리 세계만국박람회에 마련된 한국관의 전시목록을 통해서였는데. 이어
직지는 파리 시립 드루오 경매청 기록에 등장한다. 당시 직지는 1911년 앙리 베베르에게 180프랑에 판매되는데. 다시 베베르의 유족들은
1950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직지를 다른 소장품들과 함께 기증한다. 고향 청주를 떠난 직지는 그렇게 고단한 여정을 거쳐 파리에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직지의 멀고먼 여행이 끝나고 현 프랑스 파리 국립박물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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