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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답변드립니다.
작성자 우민석
내용 먼저, 우리나라 옛 인쇄기술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답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병진자는 1436년에 만들어진 대자 활자입니다. 납으로 만들었으니 재료에 있어서도 구텐베르크 보다 앞섭니다. 납활자는 녹는 온도가 320도 정도로 동이나 철보다 아주 낮습니다. 이것은 금속을 다루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물러서 동활자보다 오래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됩니다. 질의하신 병진자를 이때만 사용한 이유에 대해서 기록으로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만, 무른 재료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때문에 병진자는 아주 큰 대자만 만들었고, 중자는 동활자인 갑인자를 혼용해서 인쇄에 사용하였습니다. 이런 단점 때문에 납활자는 병진자 제작에만 사용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두 번째, 구텐베르크의 활자 제작이 쉬웠다는 것은 활자제작에 사용된 재료의 차이로 인한 쉽고 어려움을 말한 것 같습니다. 납으로 활자를 만들었을 때 가장 큰 단점은 동활자에 비해 마모나 훼손이 쉬워서 오래 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금속활자의 장점은 신속한 인쇄와 함께 오래 동안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에서 병진자를 납으로 만들어 사용하였으나 재료의 한계로 금속활자의 본래 기능을 충족시킬 수 없었던 것이 이후로 더 이상 납활자를 만들지 않았던 이유라 생각됩니다. 납활자 주조기술이 원인은 아닙니다.

세 번째, 조선시대 금속활자의 주조는 대체로 국가를 중심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제작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것과, 출판의 상업성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조선후기에는 전기의 상황과 비교해서 책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면서 큰 단체와 권력이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몇 종의 활자가 만들어 지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낙동계자와 정리자체철활자와 같은 것입니다. 질의하신 활자의 재료에 대해서는 후기에 민간에서 만든 철활자는 1~2종뿐입니다. 따라서 재료를 철로 한 것에 대해 재료의 수급문제 까지 언급하기에는 사례가 적어서 일반화해서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우리나라의 근대인쇄는 19세기말 박문국의 설립과 함께 본격적인 납활자 인쇄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활자의 주조는 기계화된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때문에 한 번 쓴 활자는 녹여서 다시 만드는게 활자보관함에 다시 분류해서 수납하는 것보다 효율적일 정도였습니다.(모두 그렇게 한 것은 아님)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납활자인쇄기술이 활발해지면서 전통의 금속활자인쇄술은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납활자인쇄는 1990년대 까지도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옵셋인쇄나 사진제판기술 등의 다양한 방식의 인쇄술이 함께 발전하면서 지금의 디지털화된 인쇄기술로 이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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