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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

Cheongju city

문화관광

지선정(止善亭)

지선정이미지

위치

현도면 중척리

전화

043-251-5601~05

소개

구용산의 남쪽 산중덕 대청댐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위치에 소재한 현암사의 용화단 안에 안치되어 있는 석불이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백제의 仙境大師가 자연돌출석에 조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각양식으로 보아 고려말기 내지 조선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광배와 대좌는 모두 결실되고 불신만이 남아 있는데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머리는 나발이고 그 위에 육계가 큼직하게 마련되어 있다. 얼굴은 둥글고 넓은 편이며 전체적으로 조각수법이 정교하지 못하다 수인은무릎 위에서 양손을 잡은 단정인이며 법의는 통견으로 옷주름이 거의 표현되지 않았다. 佛像의 크기는 全高 110cm, 頭高 43cm이다.

찾아오시는길약도이미지

현암사 석조여래좌상(縣岩寺 石造如來坐像)

현암사 석조여래좌상이미지

위치

현도면 노산리 5

종류

비지정 문화재(불교유적)

소개

현도면 노산리 동북쪽에 있는 해발 250m의 산정부와 남쪽의 계곡을 감싸고 설축한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각종지리지에 낭비성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백제 때 청주를 일명 낭비성(娘臂城)이라 기록하였으 며, 그 후의 여러 읍지(邑誌)에 같은 내용이 보이고 있어 이 산성을 <삼국사기>에 보이는 낭비성(娘臂城)과 동일한 산성으로 보려는 견해가 있다.
성의 둘레는 약 743m로서 축성은 자연적인 지형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산세가 험한 곳은 그대로 성벽을 쌓아 올리고 비교적 험하지 않은 곳은 성 안쪽의 경사면을 깎아내어 성토(盛土)한 후 폭 5.3m, 깊이 3.6m의 구덩이를 파고 잡석 또는 판석으로 기초를 다진 후에 석축하였다.
성벽은 거의 붕괴되었으나 북동쪽에 일부의 성벽이 남아있어 축성방식을 짐작하게 해주는데 석재는 화강조면암(花崗粗面岩)을 주로 사용하고 간혹 화강편마암(花崗片磨岩)을 사용하였다.
축조공법은「막힘줄눈쌓기」와 「臣字形쌓기」의 방식을 이용하였고, 성벽 안쪽에는 평지를 두어 도로와 건물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지는 북 ·동 서의 3곳에서 확인되었고, 수구는 동문지와 남문지에 있는데 남쪽의 수구 는 남문 안쪽의 웅덩이 밑바닥에 성외까지 잡석을 깔고 그 위에 성벽을 쌓아 성안의 물이 이 잡석 사이를 통하여 배수되도록 한 맹수문(盲水門)으로 되었다.
그리고 남문지 안쪽 16m지점에 가로 3.2m, 세로 1.3m, 깊이 1.8m의 직사각형 웅덩이가 있어 우물터로 추정되고 있다. 성내의 각처에서는 백제계의 조질적색토기(粗質赤色土器)와 조질회색토기 및 경질회백색토기가 다수 출토되며 통일신라기의 토기편도 수습된다. 기와조각으로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각종 기와편 그리고 고려초의 토기와 청자편이 발견된다.

강고사(江皐祠)

강고사이미지

위치

현도면 중척리

종류

비지정 문화재(유교유적)

소개

강고사는 1932년에 보성오씨(寶城吳氏) 문중에서 진사 지선정(止善亭) 오명립(吳名立, 1563∼1633)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1971년에 노봉서원(魯峰書院)에 배향되었던 문헌공(文憲公) 대사헌(大司憲) 규암(圭庵) 송인수(宋麟壽, 1487∼1547)와 포천현감(抱川縣監) 북창(北窓) 정렴(鄭, 1506∼1549)을 추향하고 매년 음력 3월 15일에 향사하고 있다.
지금의 사당은 1968년에 중건하고 1971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3간, 측면 2간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인데 내부는 통칸 마루방에 중앙에 쌍문과 좌우에 쪽문을 달았으며 "강고사(江 祠)"라는 편액을 걸었고 마당 앞에 솟을대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다. 그리고 바깥마당에는 송재용(宋在容)이 짓고 오운수(吳雲秀)가 쓰고 1937년에 세운 "강고사원정비(江皐祠院庭碑)"가 있다.

원모사(遠慕祠)

원모사이미지

위치

현도면 노산리

종류

유교유적

소개

원모사는 1928년에 예문관(藝文館) 부제학(副提學) 안조동(安祖同, 1345∼1388)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순흥 안씨(順興安氏)의 사당으로 매년 음력 10월 5일에 향사하고 있다.
지금의 사당은 1990년에 중건한 건물로 정면 5간 측면 2간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인데 내부는 우패를 모신 2간 마루방 좌우에 2간방과 1간방을 배치하고 앞마루를 놓았으며 "원모사(遠慕祠)"라는 현판을 걸고 마당 앞으로 솟을대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다.

문효영당(文孝影堂)

문효영당이미지

위치

현도면 우록리

종류

유교유적

소개

문효영당은 조선 숙종 34년(1708)에 문효공(文孝公) 영의정(領議政) 경재(敬齋) 하연(河演, 1376∼1453)과 정경부인(貞敬夫人) 성산이씨(星山李氏) 집안의 사당으로 일명 "타진당(妥眞堂)"이라 한다.
순종 25년(1825)부터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重丁日)에 향사하고 있다. 이곳에 봉안된 영정은 조선 세종 13년(1467)에 연당(蓮堂) 하우명(河友明, 1413∼1493)이 그린 하연의 초상화와 성신이씨의 초상화를 인조 19년(1641)에 이모(移模)한 것을 경상도 합천의 타진당(妥眞堂)에서 영조 25년(1749)에 개모(改模)한 것이다.

하연의 영정은 관복을 입은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 가로 79cm, 세로 134cm의 설채견본(設彩絹本)이며, 성산 이씨의 영정은 대례복(大禮服) 차림을 한 전신교의좌상으로 가로 79cm, 세로 146cm의 설채견본이다.
지금의 영당은 1943년에 중건하고 1978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2간, 측면 1간반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내부는 통칸 마루방에 2개의 쌍문을 달고 앞마루를 놓았으며 1989년에 솟을대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