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형태의 변천

  • 직지와 인쇄문화
  • 인쇄출판의 역사
  • 서적
  • 서적형태의 변천

서적형태의 변천

  • 직지와 인쇄문화
  • 인쇄출판의 역사
  • 서적
  • 서적형태의 변천
종이가 발명되어 그것이 주요한 서사재료로 등장되면서 서적에도 여러 형태의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그 가운데에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서적의 장정방식 이었다.
서적은 인류문화를 발전시키고 계승하는데 핵심이 되는 기록물로서 간행성질에 따라 필사본·목판본·활자본 등으로 나누어지고 장정형태에 따라 권자장(卷子裝)·선풍장(旋風裝)·호접장(蝴蝶裝)·포배장(包背裝)·선장(線裝)·평장(平裝)과 정장(精裝) 등으로 나누어진다. 조선시대의 서적은 주로 선장본이었으며 권자본과 선풍장본은 주로 사경, 고려시대 전기의 서적, 조선시대의 고문서류 등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호접장본과 포배장본은 고려시대 말기와 조선시대 초기의 판본에서 볼 수 있다.

권자장

죽간과 목독은 서사재료의 성질상 주로 실이나 가죽으로 장정되어졌으나 백과 종이가 발명되고 난 후부터는 장정의 형태가 여러 가지로 조금씩 변화하여 나타나게 되었다. 죽간과 목독의 위편(韋編)이나 사편(絲編) 이후에 나타난 것이 권자장이다.

권자장은 서적 장정의 최초의 형태로 권축장(卷軸裝)·축장(軸裝)·권축(卷軸)이라고도 하였으며, 우리말로는 두루마리라고 하였다. 권자장은 백서에서부터 시작되어 종이가 발명된 초기까지 사용된 서적장정의 형태이다. 백서나 종이의 경우 글을 쓰고 난 뒤 한쪽 끝 혹은 양쪽 끝에 축을 달아서, 말고 펴기가 쉽게 하고 이용에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생겨난 제도였다.

축으로 사용된 재료는 주로 죽·목이나 유리자(琉璃瓷) 등이었으며, 축은 서적의 품질이나 분류의 식별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도 사용되어졌다. [수서] 경적지에서 상품은 홍색 유리축, 중품은 감색 유리축, 하품은 칠축을 썼다고 한 것으로 보면 비교적 좋은 내용의 고급의 서적에는 유리축이, 하급의 서적에는 죽과 목으로 만든 칠축이 사용되어진 듯하다.

권자장은 죽간과 목독에 비하면 서사와 펼치면서 열람하기가 용이하며 또한 부피가 적고 중량이 가벼워 휴대와 보관이 편리한 초기의 서적장정의 형태였던 것이다. 이러한 장정의 형태는 백서가 생겨난 춘추시대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육조를 거쳐 송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어졌다.

우리나라의 초기 장정도 모두 권자장이었는데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신라 경덕왕 10(751)년 무렵에 간행된 현존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로 그 장정은 권자장이다. 신라 경덕왕 13(754)년에 착수하여 그 다음해에 완성을 본 백지먹서 [화엄경] 주본(周本)과 신라 헌안왕 2(858)년에 사성한 황지먹서 [금광명경]을 비롯한 고려시대 전기에 간인 또는 필사된 불경 등도 모두 권자장이다. 우리나라 서적의 권축은 대체로 전단목( 檀木)이며 그 축의 양쪽 노출부를 붉게 칠한 다음 옻칠을 하여 색깔이 선명하다. 그리고 귀중본은 양쪽 노출부에 수정축이나 금동축을 감입한 것도 있다.

선풍장

권자장의 뒤를 이어서 나타난 서적장정의 형태가 선풍장(旋風裝)이다. 권자본의 경우 한 권의 길이가 매우 길어 되풀이해 읽으려면 말고 펴기가 어렵다는 일상사용의 불편을 보완하여 새롭게 생겨난 서적의 장정이었다.

여기에서 생겨난 것이 접첩(摺疊)의 제도인데 그것은 접자(摺子)와 같아서 돌리면서 펼쳐보고 한 둘레가 끝나면 다시 시작되는 것이었다. 당나라 사람들은 이를 엽자(葉子)라 했고 송나라 사람들은 책자(策子) 혹은 선풍엽(旋風葉)이라 하였으며, 이러한 장정의 형태를 불전에서도 많이 썼기 때문에 이를 범협본(梵夾本) 혹은 경접장(經摺裝)이라 하여 비록 그 명칭이 여러 가지이기는 하였으나 모두 접첩의 제도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이러한 서적의 형태는 절첩한 앞·뒷면이 분리되어 있어 잘못 다루면 손상될 우려가 있었으므로 앞뒤의 표지를 1매로 고안하여 절첩한 양면에 보호용 표지를 붙여 열독할 때에는 간편하게 1엽씩 넘기면서 열람하게 되어 있었고, 서적의 내용 중에서 어느 곳을 참고하려 할 때에도 쉽게 찾아 낼 수 있도록 고안된 서적형태였다.

특히 이를 선풍엽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표지를 가볍게 집어 들고 펼치면 그 모양이 마치 선풍(부채)과 같다고 하여 생긴 명칭이다. 이러한 장정의 형태는 진대(晋代) 이후 당대 초기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여 당대 말기를 거쳐 송대초 기까지 쓰여졌다.

호접장

선풍장을 이어서 발전된 서적장정의 제도가 호접장(蝴蝶裝)이었다. 선풍장은 오래 사용하는 사이에 접은 부분이 파손되면 흩어지기 쉬운 결점이 있었다. 호접장은 선풍장의 이러한 결점을 보완하여 매판을 1엽으로 삼고 판심을 안으로 하고 가장자리를 밖으로 나오게 접어 안쪽 옆과 바깥쪽 옆의 가장자리를 배면에서 풀로 붙여 연결시킨 것이었다.

이러한 장정은 권을 열면 마치 호접(나비)이 두 날개를 편 것 같은 형상이었으므로 이를 호접장이라 하였다. 풀로 연결된 것은 선풍장의 유풍이 그대로 남은 것이었으며, 호접장에 있어 판심을 안쪽에 두고 가장자리를 밖으로 향하게 한 것은 검열에 편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변란(邊欄) 밖의 서이(書耳)에는 때로 편과 장의 표제(標題)를 나타낸 것도 있었다.

이러한 장정의 서적을 보관할 때는 서배(書背)를 위로 향하게 하고 서근(書根)을 밖으로 향하게 하였는데, 그것은 고서의 가장자리가 닳거나 파손되어도 문자는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호접장은 각본이 유행된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당대를 거쳐 송·원대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었다.

포배장

호접장을 이어서 나타난 것이 포배장(包背裝)이었다. 호접장도 오래 사용하여 풀로 붙인 부분이 파손되면 산란되기 쉽고 또 서배 부분이 파손되면 판심부분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점을 보완하여 생겨난 서적장정의 형태가 바로 포배장이었다.

포배장은 봉면(封面)이 서배를 모두 싼 것은 호접장과 같고 판심이 밖으로 향하도록 한 것이 다를 뿐이며, 호접장은 풀로 붙였어도 실로 꿰매지 않은데 비해 포배장은 실이나 종이 심지로 꿰매고 난 다음에 그 위에 다시 봉면을 붙인 것이 서로 다른 점이었다. 밖으로 향해진 판심에는 대개 서명, 권수, 장차 등이 기록되어 열람에 편의를 도모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서적의 장정은 남송 시대에서 시작되어 명대 중엽까지 사용되었다.

선장

포배장의 뒤를 이어 나타난 것이 고서의 장정에서 가장 널리 쓰인 선장(線裝)이었다. 선장은 포배장의 진보된 형태로서 1매씩 문자가 밖으로 나오도록 똑바로 접어 중첩하고 1매의 표지를 전·후면에 가하여 서뇌(書腦)부분을 끈으로 꿰매는 철장(綴裝)으로서 봉면이 튼튼하여 쉽게 훼손되지 않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포배장과 선장의 다른 점은 포배장은 표지로 서배를 쌌으나 선장은 이를 싸지 않은 점이며, 포배장은 종이 심지나 실로 봉피(封皮)의 안을 꿰맸으나 선장은 실로 봉피의 밖까지 꿰맨 점이었다. 선장은 명대 중엽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고서의 장정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으나 가장 유행되었던 시기는 청대였다.

이 장정은 끈으로 튼튼하게 꿰매어 만든 점에서 철장이라고도 하는 데 튼튼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선장본은 황색 계통의 종이에 연화문(蓮花紋) 등이 새겨진 능화판(菱花板)으로 타출된 표지를 사용하여 오른쪽 언저리에 다섯 개의 구멍을 뚫어 홍사로 꿰맨 오침안정법에 의한 제본이 특징이다.

평장·정장

청대 중엽 이후부터 중국에서도 점점 기계화된 신식인쇄술이 도입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서적장정의 형태에도 평장(平裝)과 정장(精裝)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 장정은 바로 오늘날의 양장(洋裝)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서적 형태와 재료 장정방식,전포방식, 유행시대 안내
서적형태 서적재료 장정방식 전포방식 유행시대
죽간목독 죽간목독 위편사편 초사(손으로 씀) 상고-동진 (BC 4세기 이전)
권자장 겸백 권자장 초사 춘추-육조(BC 4세기-5세기)
종이 권자장 초사 동한-송초(2세기110세기)
권자장과 책엽의 과도시기 종이 선풍장 초사 및 초기목판인쇄 만당시기(9세기 -13세기)
경접장
책협(쌍엽단면인쇄) 종이 호접장 목판인쇄 오대-원 (10세기-13세기)
종이 포배장 목판인쇄 남송-명 중엽 (12세기-15세기)
종이 선장 목판인쇄
활자인쇄
명 말엽 후 (14세기-현재)
책엽(단엽쌍면인쇄) 종이 평장 활자외쇄
연활자
현대 (19세기-현재)
정장 석인
영인

담당자 정보

  • 담당부서 운영사업과
  • 담당자 우민석
  • 전화번호 043-201-4263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 조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 허락 표시
공공누리 마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출처표시, 상업적 이용금지, 변경금지) 마크

출처 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