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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사지철당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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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에서는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로 2개의 화강암 지주와 20개의 철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간의 밑에서 3번째 단에 당기가 양각되어 있어 그 조성년도(고려 광종 13년, 962)를 명확히 알 수 있으며, 당시 준풍(峻豊)이라는 고려 독자의 연호를 널리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민족의 주체성을 알려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그러나 당간이 소재했던 용두사의 규모 및 창건과 폐사년도는 정확하지 않다. 당간이란 절앞에 세워 부처의 위신과 공덕을 나타내고 정의구현을 목적으로 당이라 불리는 깃발을 달아 두기 위한 것인데, 현재 전국에는 청주의 용두사지 철당간, 공주갑사의 철당간, 나주동문밖 석당간, 담양 읍내리 석당간 등이 남아 있으나 본 철당간만이 조성 년대가 명확하다.

  • 국가지정문화재 : 국보 제 41호(1962. 12. 20 지정)
  • 위치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48-19

상당산성

상당산성 이미지

상당산성(上黨山城)은 삼국시대 백제의 상당현에서 유래된이름인 듯하며, 둘레가 4.2km, 높이 3∼4m, 면적 54,700평의 거대한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최초의 축성 년대는 알 수 없으며 『삼국사기』에는 김유신장군의 셋째 아들 원정공이 청주에성을 쌓았다고 하였고, 지금의 상당산성은 임진왜란(1592)때 보수하고 1716년(숙종42년)에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1992년 12월 동장대인 보화정을 복원하고, 1993년 8월 남문주변 여장을 복원하였고, 또한 1995년 발굴조사로 서장대의 규모(15평)와 위치가 확인되었다. 또한 현재의 저수지는 본래의 수문이 홍수로 없어진 후 1943년에 만든 것이다. 평상시에도 시민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며 우리 시의 대표적인 시민휴식공간으로 앞으로 산성내 한옥마을을 이전하고 철저한 고증을 거쳐 옛 모습대로 복원하고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할 계획이다.

  • 국가지정문화재 : 사적 제212호(1970. 10. 1 지정)
  • 위치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성내로 124번길 14

신봉동백제고분군

신봉동백제고분군 이미지

심천변의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한 청주신봉동백제고분군은 1987년 사적 제319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지금까지 5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300여기의 널부덤(土壙墓)과 3기의 돌방무덤(石室墓)이 발견되어 백제권역 최대의 무덤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곳에서는 많은 토기와 철기류, 장신구가 출토되었는데 공격용 무기인 큰 칼과 창, 화살촉, 방어를 위한 갑옷과 투구 그리고 말을 타기 위한 재갈과 발걸이 등이 출토되었다. 생활공구인 단지, 바리, 잔 등의 토기류와 금동제 귀걸이, 목걸이 등의 장신구가 많이 출토되었다. 청주백제유물전시관은 1993년 정화계획이 수립된 후 1998년 정부의 문화권유적정비사업으로 선정되면서 1999년 착공하여 2001년 11월 29일 개관하게 되었다.

  • 국가지정문화재 : 사적 제319호(1987. 7. 18 지정)
  • 위치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 산7
  • 홈페이지 : http://www.cjbaekje.net

정북동토성

정북동토성 이미지

청주 오근장동의 미호천변에 있는 정북동토성은 사적 제 415호로 청주시 북쪽 미호천 연안에 펼쳐진 평야의 중심에 위치한 토성이다. 커다란 제방처럼 보이는 이 성은 서울 풍납토성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성이다. 정북동토성은 형체를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토성으로 둘레가 650여 미터에 이르는 정사각형 형태의 성이다. 동서남북으로 문터가 남아 있는데, 남문과 북문은 성벽을 어긋나게 쌓았다. 이것은 적이 성으로 곧바로 들어올 수 없도록 만든 옹성의 초기 형태이다. 성의 네 귀퉁이와 성벽중간에는 앞으로 내어쌓은 곳이 보인다. 이것은 성벽을 옆에서 감시하고, 유사시 성벽으로 달려드는 적을 옆에서 공격하기 위한 것으로 치성의 초기 형태이다. 토성의 구조나 출토 유물 등으로 미루어 3C경 초기 토성 연구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동래부사송상현충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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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기념물 제16호인 충렬사(忠烈祠)는 임진왜란때 순절한 동래부사 송상현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선조 28년(1595)에 묘소를 동래에서 이곳으로 이장하고 광해군 2년(1610)에 사당을 창건하였으며 그 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송상현의 호는 천곡(泉谷), 시호는 충렬인데, 선조 9년(1576) 문과급제후 선조 24년(1591) 동래부사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동래성에 육박하자 군사를 이끌고 항전하다 왜병에게 살해되었다. 충렬사 뒷산에는 송상현의 묘소와 현종 원년(1659)에 세운 신도비가 있고, 사당 입구에 선조 28년(1595)에 건립한 충신문이 있다. 지금의 건물은 1980년에 중수한 건물로 정면 3간, 측면 2간의 겹처마 목조기와집인데 내부는 통칸 마루방에 3개의 분합문을 달고 앞퇴를 두었으며, 마당 앞에 삼문을 세우고 주위에는 석축담장을 쌓아 보호하고 있다.
시에서는 천곡선생의 애국충절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2001년에 인근 부지를 확장 정비하여 전시관과 사당을 신축하였으며, 주변을 공원화하여 시민들이 역사와 함께 호흡하는 공간으로 조성하였다.

안심사영산회괘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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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산(九龍山) 서쪽 기슭 사동리 절골마을에 자리잡은 안심사(安心寺)에 있는 불화(佛畵)로 비로전(毘盧殿)안의 불단 앞에 목제함을 마련하고 그 안에 보관하고 있다.이 괘불(掛佛)은 윗부분 일부에 약간의 손상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색조가 거의 원상을 간직하고 있다. 불화의 내용은 석가여래불(釋迦如來佛)을 주존(主尊)으로 그 주위에 불(佛)·보살(菩薩)과 제자들인 교화성중(敎化聖衆)과 사천왕(四天王)의 호법신(護法神)들을 좌우대칭으로 배치한 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로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든 청문성중(聽聞聖衆)과 지방불(地方佛)이 둘러싸고 있는 구도를 실감나게 나타내었다. 주존은 나발(螺髮)의 머리에 높고 뾰족한 육계가 있고 중간에 계주가 있으며 눈·코·입과 수염이 장식화되어 조선중기의 불화수법을 보여준다. 불화의 하단에는 "순치 9년 임진 4월일(順治九年 壬辰四月日)"이라는 먹글씨(黑書)가 있어 조선 효종(孝宗) 3년(1652)에 제작되었음을 밝혀주고 있으나 화공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다.괘불을 배접한 삼베바탕의 크기는 가로 486.5cm, 세로 741cm이며, 불화의 크기는 가로 462cm, 세로 627cm이며 본존상(本尊像)의 높이는 372cm이다. 1990년에 국고보조를 받아 화강암으로 조성된 괘불대(掛佛臺)를 대웅전 앞에 설치하여 부처님 오신날 등 중요한 행사때 괘불을 걸어 예배하도록 공개하고 있다.

  • 국가지정문화재 : 국보 제297호
  • 위치 :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사동길 169-28

계산리 오층석탑

계산리 오층석탑 이미지

피반령 북쪽 기슭의 계산리 장터마을에 있는 이 석탑은 계산리사지(桂山里寺址)에 남아 있는 유일한 석조물(石造物)이다. 절터는 모두 폐허가 되어 논 밭으로 변하고 5층석탑만이 중심부에서 옛자리를 지키고 있다. 단층기단(單層基壇)과 5층의 탑신부(塔身部)는 원형대로 있으나 상륜부(上輪部)는 모두 없어졌는데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각층의 탑신은 우주(隅柱)나 탱주( 柱)가 표현되지 않았고 1층은 4매의 면석(面石)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2층 이상은 1매의 탑신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1·2층만이 2석(石)이고 그 이상은 1석이며,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1·2층이 5단, 3·4층이 4단, 5층이 3단으로 위로 갈수록 체감되어 있어 안정감을 주고 있는데 전각(轉角)이 곡선으로 처리되지 않고 낙수면(落水面)이 짧은 것은 전탑양식(塼塔樣式)에서 보이는 특이한 모습으로 둔중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 각층의 옥개석 상단에는 윗층의 탑신석을 받기 위한 1단의 괴임대가 마련되어 있어 결구상의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이 탑에서 주목되는 것은 기단이나 탑신에 우주나 탱주가 생략되고 옥개석의 반전이 없이 낙수면이 짧은 양식 등인데 이러한 조탑수법은 이곳의 지방적 특색으로 보인다. 조성시기는 고려초기로 추정되고 있으며, 탑의 규모는 전체 높이 약 7m로 각부는 기단하대석폭 212cm, 기단 중대 석폭 175cm, 기단 갑석 높이 23cm , 부연 높이 8cm, 폭 195cm, 초층 옥신석 높이 30cm, 폭 130cm, 초층 옥개석 높이 95cm, 폭 195cm, 2층 옥신석 높이 30cm, 폭 110cm, 2층 옥개석 높이 70cm, 폭 160cm이다.

  • 국가지정문화재 : 보물 제511호
  • 위치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계산리 48번지

신숙주 초상

신숙주 초상 이미지

이 영정은 조선초기의 학자이며 세조의 등극을 도와 보필한 영의정 신숙주(申叔舟)의 영정이다. 신숙주의 자는 범옹(泛翁), 호는 보한재(保閑齋), 희현당(希賢堂), 본관은 고령(高靈)으로 세종(世宗) 20년(1438)에 진사(進士), 생원(生員)에 들었고 이듬해에 문과에 3등으로 급제하여 여러 요직을 거치면서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을 창제하는데 공이 컸다. 세조가 즉위하자 공신(功臣)이 되어 우의정과 좌의정을 걸쳐 영의정을 지내기도 했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세종실록·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동국통감(東國通鑑)·오례의(五禮儀)를 왕명으로 편찬하였다. 영정은 모시 바탕에 그렸는데 공신도상식(功臣圖像式)이며 문관(文官)의 일상복에 모대(帽帶)·발받침를 구비하고 옆으로 약간 틀어 앉아 있는 왼쪽 모습을 그린 의상(椅像)이다. 상은 모시 바탕에 묽은 먹물로 초상(草像)하고 색을 칠한 후 농담(濃淡)이 조화된 묵선(墨線)으로 윤곽을 뚜렷하게 그린 형태로 화폭은 비교적 큰 편이다. 흉배(胸背) 무늬는 관복에 직접 금방 혹은 자수하였는데 후세에 많이 보이는 자수방형흉배(刺繡方形胸背)와는 달리 명(明)나라 양식을 따른 것으로 보이며 구름 아래 목단(牧丹)과 금계(錦鷄)를 안배하였으니 당시의 복제(服制)로 미루어 정2품직(正二品職)을 나타낸 것으로 짐작된다. 영정의 오른쪽 여백에는 신숙주의 사후 75년에 다시 색을 칠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의 상태로 보아 그 이후의 보수는 없었던 듯하다.

  • 국가지정문화재 : 보물 613호
  • 위치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인차리 13

안심사 대웅전

안심사 대웅전 이미지

안심사의 주존(主尊)을 모신 법당으로 조선중기의 일반형 목조와가(木造瓦家)이다. 신라 혜공왕(惠恭王) 11년(775)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중건하고, 그 후 조선 인조(仁祖)4년(1626)에 송암대사(松庵大師)가 중건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존 건물은 1626년에 중건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처마 끝에 장식된 암막새 기와에 "강희십일년임자(康熙十日年壬子)" 명문(銘文)이 있어서 현종(顯宗) 13년(1672)에 번와한 사실을 알 수 있고 그 후에도 수차 중수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3단의 자연석으로 된 기단 위에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주석으로 삼았으며 건물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식(多包式) 맞배건물로 측면에도 공포가 있어서 매우 이례적이다. 건물내부의 천정에는 대웅전을 장엄하게 보이기 위해 만든 화려한 닷집을 갖추었다. 1976년 12월 23일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다가 1980년에 보물로 승격되었다.

  • 국가지정문화재 : 보물 664호
  • 위치 :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사동길 16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