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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래

Cheongju city

우리동소개

복대동 유래

  • 본래 청주군(淸州郡) 서주내면(西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며 ‘짐대마루’라고 부르던 지역이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애 따라 죽천리, 화진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복대리라 명명하고 사주면에 편입하였다.
  • 1963년 복대동으로 바꾸어 청주시로 편입하였다. 與地圖書(여지도서), 湖西邑誌(호서읍지), 忠淸道邑誌(충청도읍지) 에는 ‘卜大’로 나오나 1961년에 강행된 淸州誌(청주지)로부터 ‘복대’라고 쓰기 시작하였다.

가는골

  • '가는골'은 중간말 뒤에 있던 골짜기이다. 골짜기가 가늘게 쭉 빠진 형상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국에 '가는골'이라는 골짜기 이름이 아주 많다. 한자로는 '세곡'(細谷)으로 쓴다. 지역에 따라서는 '가난골', '가늘골', '가능골'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가난골'은 '가는골'의 변이형이고, '가늘골'은 '가늘다'[細]의 어간 '가늘-'에 직접 '골'이 결합된 어형이며, '가능골'은 '가는골'의 자음 동화 형태이다.

떡버들나무촌/떡버들나무

  • '떡버들나무촌'은 복대동에 있던 들이다. 지금의 가경동과 복대2동 사이가 된다. '떡버들나무들'이라고도 한다. '떡버들나무'는 '떡버들'을 가리킨다. '떡버들'은 버드나뭇과의 낙엽 활엽 소교목이다. 들에 떡버들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두 그루는 고사 일로에 있던 아주 큰 나무였다고 한다.

마당이마/마당니마

  • '마당이마'는 복대동 앞쪽에 있는 마을이다. 지금의 서원초등학교 자리와 그 옆에 해당한다. '마당니마'라고도 한다. '마당이마'는 '마당이말'에서 '말'의 'ㄹ'이 탈락한 어형으로 추정된다. '마당이말'은 '마당이'와 '말'로 분석하여 이해할 수 있다. '마당이'는 '마당'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어형이다. '마당이'는 '마당이말'을 비롯하여 '마당이들'에서 보듯 지명의 선행 요소로 나타나지만 아주 제한적이다. 이에 비해 '마당'은 '마당말', '마당바위', '마당배미', '마당재' 등에서 보듯 지명의 선행 요소로 아주 적극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마당말'은 '마당이말'과 비교하여 접미사 '-이'의 유무에서만 차이를 보여 아주 주목된다. 이들 '마당'을 포함하는 지명을 살펴보면, 마당처럼 '넓고 평평한 지역'을 지시한다. 따라서, '마당말'은 '넓고 평평한 마을'로 해석되며, '마당이말' 또는 '마당이마'도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마을이 마당처럼 넓고 평평한 지역에 자리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마루들/마룻들

  • '마루들'은 짐대마루 앞에 있던 들이다. '마룻들'로 발음하기도 한다. '마루들'은 '마루'와 '들'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지명의 선행 요소로서의 '마루'는 '크고 넓은'의 의미이다. 그러니 '마루들'은 '크고 넓은 들'로 해석된다. 들의 규모가 아주 커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루들'은 아주 흔한 들 이름이다.

맹정골/맹경골

  • '맹정골'은 왕대굴 위쪽에 있던 골짜기이다. '맹경골'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쉬' 즉 '수렁'이 많아 한번 빠지면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맹정골'은 '맹정'과 '골'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맹정'은 '냉정'(冷井)의 변형으로 추정된다. '냉정'(冷井)은 '찬 우물'이라는 뜻이니 '냉정골' 즉 '맹정골'은 '찬 우물이 있는 골짜기'로 해석된다. '맹정'은 '맹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맹장골'의 '맹장'이 바로 그것이다. '맹장골'도 '맹정골'과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사직동의 '맹장이'가 참고된다.

복대공동묘지

  • '복대공동묘지'는 왕대굴 뒤에 있던 공동묘지이다.

복대교/대농뒤다리/진흥원다리

  • '복대교'는 짐대마루에서 진재산 쪽으로 건너는 다리이다. 대농 뒤에 있는 다리여서 '대농뒤다리'라고도 하며, 진흥원 근처에 있는 다리여서 '진흥원다리'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목조 다리였는데 일제 시대에 콘크리트 다리로 개조하였다.

수령사태

  • '수렁사태'는 진구렁 옆에 있던 들이다. '수렁'과 '사태'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사태'는 '새터'의 변형으로 추정되어 '수렁사태'는 '수렁이 있는 새터'로 해석된다.

신율

  • '신율'은 마당이마 동쪽 너머에 있는 마을이다. 지금의 복대초등학교 주변이다. 1980년대에 신시가지 조성 계획에 따라 원래의 신율봉과 신율 마을을 없애고 이곳에 복대초등학교와 신주택을 세웠다. '신율'은 '新栗'이다. 새로 생긴 마을이어서 '新'자를, 밤나무가 많아서 '栗' 자를 이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일설에는 고종 말엽에 낙향한 서씨(徐氏)들이 처음으로 마을을 조성할 때 밤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하여 마을 이름에 '新' 자와 '율'(栗)자를 넣었다고 한다. 전국에서 '신율'이라는 마을 이름이 몇 군데 확인된다. 이 중에는 '새밤'이라는 속지명과 함께 쓰이는 지역도 있다.

신율봉/신율뽕

  • '신율봉'은 신율 뒤에 있는 산이다. '신율뽕'으로 발음하기도 한다. 지금은 공원부지로 약간만 남아 있다.

왕대골/양대굴/왕대쪽/왕대동

  • '왕대골'은 복대동에 있는 마을이다. 지금의 서부경찰서 뒤가 된다. '왕대굴'로 발음하기도 하고, '왕대쪽', '왕대동'(-洞)이라고도 한다. '왕대골'은 '왕대'와 '골'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왕대'는 대나무의 일종이고, '골'은 '골짜기'의 뜻이다. 그러니 '왕대가 무성한 골짜기'로 해석된다. 왕대나무가 개울가에 숲을 이루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국에는 '왕대골' 또는 '왕대굴'이라는 지명이 많은데, 대부분 '왕대나무'와 관련된 유래설이 결부되어 있다. '왕대쪽'은 '왕대'에 '쪽'이 결합된 어형이다. 이러한 지명은 마을 이름으로 아주 특이하다. '왕대동'은 '왕대'에 마을을 지시하는 '동'(洞)이 결합된 것이다. '왕대'는 '왕대골', '왕대동'을 비롯하여 '왕대배미', '왕대벌', '왕대보', '왕대산' 등에서 보듯 지명의 선행 요소로 적극적으로 쓰인다. 왕대굴다리 '왕대굴다리'는 왕대굴 앞에 있는 다리이다.

우뚝바위

  • '우뚝바위'는 대농기숙사 앞에 있는 바위이다. 우뚝 서 있는 바위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민들은 배를 매던 도구로 생각한다.

죽천

  • '죽천'은 복대동에 있는 마을이다. '죽천'은 '竹川'으로 '대나무가 많은 내'라는 뜻이다. 예전에 이곳 하천변에 대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쌍학동에 살던 학이 월명산으로 날아갔는데 학이 워낙 죽순을 좋아하여 죽천에 와서 죽순을 따 먹고 풍년골을 거쳐 발산리로 넘어가 깃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의 '죽천'은 하천 이름이 아니라 마을 이름으로 쓰인 것이다. '죽천'가에 마을이 생기자 하천 이름으로 마을이름을 삼아 그렇게 부른 것이다. 전국에 '죽천'이라는 지명이 많은데, '대내'라는 속지명과 함께 쓰이기도 한다.

중간말

  • '중간말'은 복대동에 있는 마을이다. '중간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인데, 마을이 죽천과 짐대마루 사이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국에는 '중간말'이라는 마을 이름이 대단히 많다. 마을이 두 지역 마을의 복판에 있거나 사이에 있을 때 쓰인다. 이런 마을은 '중간말' 말고도 '중말' 또는 '샛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중간말'은 지역에 따라 '중간마'로 나타나기도 한다.

진구령

  • '진구렁'은 지금의 공단 자리에 있던 들이다. 짐을 지고서 구렁 사이를 넘나들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신빙성이 없다. '진구렁'은 '진'과 '구렁'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진'은 '긴'[長]의 구개음화 어형으로 볼 수도 있고, '질다'의 관형사형으로 볼 수도 있다. '구렁'은 '땅이 움푹하게 팬 곳'이다. '진'을 '긴'[長]의 구개음화 어형으로 보면 '진구렁'은 '긴 진흙 구렁'으로 해석되고, '진'을 '질다'의 관형사형으로 보면 '진구렁'은 '질척거리는 진흙 구렁'으로 해석된다. 전국에 '진구렁'이라는 지명이 아주 흔한데 대부분 '긴 구렁'이나 '긴 골짜기'로 해석한다. 이 경우의 '진'은 장음(長音)으로 발음된다.

진재고개

  • '진재고개'는 짐대마루에서 진재산으로 넘어가던 고개이다. 지금의 조달청 앞이 된다. '진재'와 '고개'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진재'는 '긴재'의 구개음화 어형이다. '긴재'의 '긴'은 '길다'[長]의 관형사형이고,1) '재'는 '고개'의 뜻이다. 그러니 '진재'는 '긴 고개'로 해석된다. 고개의 길이가 아주 길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국에 '진재'라는 고개가 아주 많다. '장령'(長嶺), '장현'(長峴)이라는 한자 지명과 함께 쓰이기도 한다. '진재'에 '고개'가 붙은 어형이 '진재고개'이다. '진재고개'는 '고개'를 뜻하는 '재'와 '고개'가 아울러 결합된 동의중복형 지명이다. '진재고개'라는 고개 이름도 전국에 아주 널리 분포한다.

진재산

  • '진재산'은 짐대마루 앞에 있던 산이다. '진재' 즉 '긴 고개'가 있는 산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진재봉'과 같은 조어 관점의 지명이다.

짐대마루/진대마루/복대

  • '짐대마루'는 복대(福臺)에 대한 옛 지명이다. '진때마루'로 발음하기도 한다. 지금은 '복대'(福臺)라는 한자 지명을 더 많이 쓴다. '짐대마루'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선조 때 토정 이지함과 박춘무가 아양산에 올라 복대동 일대를 보니 행주형(行舟形)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장차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번창하게 될 것이지만 정착하는 사람은 적고 뜨내기가 많을 것을 알았다. 그것은 달리는 배에 짐대(돛)가 없기 때문이며, 행주형 지세에 물이 귀하다는 데 그 원인이 있음을 알았다. 그들은 이곳에 번창한 도시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무쇠로 만든 당간을 세우고 그 곳 마을을 '짐대마루'라고 불렀다. 그리고 배가 함부로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아양산 동쪽 기슭(현 지동동)에 쇠대를 박았다. 지금도 이곳을 '쇠대박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 연유한다. 그 후 토정 일행은 우암산에 올라가 청주를 바라보고 청주 땅이 진정한 행주형임을 알았다. 그리고 짐대마루보다 청주가 더 발전을 하게 될 것이며, 뒤이어 짐대마루도 크게 번창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예언대로 오늘날 복대동 일대는 큰 건물과 주택이 즐비한 번화가가 되었다. 위의 전설에 따르면, '짐대마루'는 '돛대에 해당하는 당간을 세운 마을'로 이해된다.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바라본 지명 유래이다. '짐대마루'는 '짐대'와 '마루'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짐대'는 '돛대' 또는 '사찰에서 당(幢)을 달아 세우는 기구'이다. 그런데 '짐대마루'의 '짐대'가 두 의미 중 어떤 의미를 띠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행주형 지세를 고려한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짐대'는 배의 '돛대'로 해석해야 한다. 이 경우에는 '짐대'가 '돛대'를 상징한다. 한편,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짐대마루'의 '짐대'는 '당을 달기 위한 기구'로 해석해야 한다.
  • 이 지역이 원시 종교이건 불교이건 신앙의 중심지였다면, '짐대'는 신앙의 징표로 바라볼 수 있다. '짐대'를 어떤 관점에서 보든 '짐대'는 '나무나 쇠로 만든 높게 세워진 대'임에는 틀림이 없다. '짐대마루'는 이 '짐대'가 있는 곳이다. '마루'는 지명의 후행 요소로 나오면 '넓은 곳', '높은 곳' 등의 의미를 띤다. '산마루', '원마루', '창마루'에 보이는 '마루'의 의미가 참고된다. 그렇다면 '짐대마루'는 '짐대가 있는 넓고 높은 곳' 정도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 지역이 비교적 넓고 높은 곳이기에 '마루'가 이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복대'는 지금 '福臺'로 쓰고 있다. 그런데 옛 문헌인『輿地圖書(여지도서),『湖西邑誌』(호서읍지) 등에는 '卜大'로 나온다. '卜大'가 고형임을 알 수 있다. '卜大'는 '짐대'에 대한 차자(借字) 표기이다. 지금 '卜'은 '복'으로 읽고 '점'으로 새긴다. 그런데 이전 시기에는 '짐'으로 읽었거나 '짐'으로 새겼을 가능성이 있다. '卜'이 음차자(音借字)일 수도 있고 훈차자(訓借字)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卜'과 '짐'이 결부된 시기에서는 '卜大'는 '복대'가 아니라 '짐대'로 읽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卜'과 '짐'의 결속력이 약해지면서 '卜'의 일반적 한자음인 '복'으로 읽은 것으로 볼 수 있다.2) '卜大'의 '大'는 '짐대'의 '대'에 대한 음차자이다. 그런데 '卜大'는 지금 '福臺'로 쓰인다. '福臺'는 '卜大'가 '짐대' 아닌 '복대'로 읽힌다는 것을 전제로 한 명칭이다. '福臺'라는 명칭은『淸州誌』(1961)에서 처음으로 쓰고 있다. '卜'을 '福'으로 바꾼 것은 순전히 지명의 의미를 고려해서이다. 그리고 '大'를 '臺'로 바꾼 것은 '짐대'에 후행하는 '마루'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마루'가 '넓고 높은 곳'을 지시하기에 그 의미에 부합하는 '臺'를 선택한 것이다

톨미

  • '통미'는 짐대마루 끝에 있던 들이다. 지금의 대농 끝이 된다. '통미'의 '통'은 '桶'일 가능성이 있고, '미'는 '山'의 뜻이다. 이렇게 보면, '통미'는 '통처럼 작고 동그랗게 생긴 산'으로 해석된다. 산이 통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국에 '통미'라는 산이 많은데, 대부분 이와 유사한 유래 설이 결부되어 있다. '통미'와 같은 의미의 산 이름으로 '통뫼', '통산', '통미산' 등도 쓰인다. '미'와 '뫼' 그리고 '산'은 동일한 의미의 단어이다. '통미산'은 '통미'에 '산'이라는 단어를 잉여적으로 결합한 단어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통미'는 산 이름이 아니라 들 이름으로 쓰인 것이다. 산 이름으로 그 산에 인접한 들의 이름을 대신한 예이다.

통미주막

  • '통미주막'은 통미에 있던 주막이다.

하그락들

  • '하그락들'은 중간말과 죽천 사이에 있던 들이다. '하그락'과 '들'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하그락'의 어원을 알 수 없어 '하그락들'의 유래도 밝히기 어렵다. 학이 좋아하는 대나무가 많은 들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신빙성이 없다.

화재뚝

  • '화재뚝'은 대농공장 옆에 있는 둑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둑을 항구에 있던 부두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