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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래

Cheongju city

우리동소개

연혁

  • 봉명동은 본래 청주군 서주내면의 지역으로서 봉명이라 함.
  • 1914년 행정구역폐합에 따라 덕암리 (德岩里), 주현리(珠峴里), 상리(上里)와 서강내 일상면의 왕 암리(旺岩里)일부를 병합하여 봉합리라 하며 사주면에 편입.
  • 1963년에 청주시로 편입.

동 및 마을유래

봉명동과 송정동은 조선시대의 여러 마을 이름에서는 보다 작은 단위의 마을 이름만 나타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하여 생긴 이름이다. 1914년에 청주의 서주내면(西州內面)에 소속된 봉명 덕암 주현 상리와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에 소속된 왕암의 일부까지를 합하여 봉명리라 하고, 서주내면 송정 좌귀 외중과 서강내일하면의 송정 왕암 일부를 합하여 송정리로 하여 모두 사주면(四州面)으로 하였다. 작은 여러개의 마을을 통폐합하여 행정동리로 만든 것이었다. 따라서 본디부터 있어 온 자연부락은 오랜 역사성을 지닌 채 외부 사람들에게는 차츰 잊혀지게 되었으나,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아직도 옛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봉명1동의 옛 지명

  • 과상미〔果商山,果桑山,果産里〕 : 현재의 봉명초등학교와 시영주택 일대로 남씨 촌으로도 불렸다. 과일밭 지역으로 과일이 많이 났다고도 한다. 이곳의 전설이 전해오는 것이 있으니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중엽에 한 떼의 보부상(등집 봇집장수)들이 청주를 향하여 들어가다가 날이 저물어 백봉산(白峯山 : 죽말 뒤에 있는 산)아래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한밤중 삼경에 이르자 활시위 소리가 들려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들은 백 봉산 중턱에서 달빛 아래서 활을 쏘는 다섯 사람의 무사들을 보았다. 이 무사들은 활쏘기를 익히고 나서 몸을 씻고 산꼭대기로 올라가 책을 펴들고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도 그 무사들은 조용히 예사롭고 정숙하게 행동하였다. 동녘 하늘에 해가 돋을 무렵 안개가 짖게 깔리자 다섯 무사들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보부상들은 마치 신선을 본 것과 같았다. 안개에 휩싸인 백봉산이 얼마나 아름다워 보였는지 모두들 중국에 있는 명산인 과상산(果商山)과 같다고 칭탄하여 백봉산을 과상산으로 바꿔 부르 게 되었다. 보부상들은 성문으로 들어가 관청에 고하였는데, 관에서도 그 다섯 무사들의 정체를 밝혀보려 했으나 찾을 수 가 없었다. 후에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그 다섯 무사들은 조선의 개국공신 남은(南誾)의 후예라고 한다."
  • 덕박골, 德巖) : 봉명동의 북쪽 원송절을 바라보는 곳의 마을 이름인데, 최근에 준공업개발지역으로 들어가 현재 구획정 리 사업을 하고 있다. 마을 동편의 산기슭에 커다란 바위들이 노출된 봉우리가 있었고, 그 중 가장 큰 바위를 덕바우라고 하였다.
  • 두집 매 : 지금의 봉명파출소 아래의 지역으로 집 두 채가 기슭에 있었다.
  • 백봉공원 : 백봉산의 공원으로, 봉명 2동 송정동 사무소의 북쪽이고 봉명중학교 서쪽이다.
  • 범고개 : 지금의 봉명 1동사무소 북쪽과 남서쪽으로 나 있었던 옛 고개길.
  • 봉계(鳳溪) : 새터와 죽말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 봉명(鳳鳴) : 현재의 봉명 2동 사무소 일대를 금반산(金盤山)에서 보면 봉황과 같이 생겨서 봉명이라 했으며, 봉 황은 대 나무 열매〔竹實〕만 먹는데, 봉황의 먹이가 있던 곳이 죽천과 왕대골이라 한다.
  • 상봉 : 지금의 삼정백조아파트 앞의 옛 마을 이름.
  • 새터말 : 봉명주공아파트 건너의 과상미에 새로 생긴 시영주택지역의 이름이다.
  • 서무실방죽 : 좌기 북쪽에 있던 방죽.
  • 서파땡이 : 진약고개 옆에 있었던 들판 이름.
  • 솔밭공원 : 소나무가 우거진 부분을 공원으로 만든 것으로 공업단지 안의 큰 휴식공간이다. 흥덕로 건너 남쪽이 대농 청주공장이다.
  • 송정(松亭, 송정리) : 소나무 정자가 있어서 송정이라 하였다 하며, 충북선 철도가 놓여져 송정역(서청주역)이 섰었다. 1968년에 철도의 직선화로 철도노선이 내곡동 쪽으로 옮겨지고, 공업단지 지역이 되었다.
  • 쌍학골 : 지금의 청주고등학교 뒤에 있었던 골짜기 이름. 이 골짜기가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어서 붙여진 이름 이라 한다.
  • 월명산(월명공원) : 봉명 송정동의 중앙에 있는 월명산과 주변의 낮은 산으로, 제 4공업단지 구역이 됨.
  • 정사간(鄭司諫, 鄭士間, 사간동, 증사간, 외중리) : 좌귀 동북쪽의 마을로 조선 성종 때 사간원의 대사간 벼슬을 한 정설 (鄭泄)이 이곳에 살게 되었으므로 사간동, 혹은 정사간이라 하였다. 정설의 6대조인 정수(鄭需)는 고려 충렬왕 때에 과거에 급제하여 대사간을 지낸 바 있어 진주 정씨 집안이 이곳에 살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혹은 정사간(鄭士間)이란 사람이 마을 을 이루었다고도 한다. 지금의 공업단지 우성모방 자리 부근이었다.
  • 좌귀(좌기, 송귀, 주아게) : 예전에 귀인이 좌정하였던 곳이라 하여 좌귀라 하였으며, 송정 동쪽의 마을이었으나, 공업단 지가 되어 지금의 한국특수도자기 제2공장 부근이었다.
  • 주연이(주암, 珠峴) : 지금의 대우 꿈동산 아파트 부근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그곳 산에 둥글둥글한 석록암 바위가 마치 구슬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으로, 구슬재 구슬고개가 있어 낮게 덤박골로 통하였으나, 준공업단지로 개발되어 없어졌다.
  • 진야고개 : 두집매에서 왕대굴로 넘어가는 고개.
  • 진야고개 : 지금의 청주고등학교 뒤쪽에 있는 고개.
  • 천석골(천수골) : 봉명동 사거리에서 남쪽으로 봉명 1동 사무소까지의 지역으로, 물이 마르지 않아 가뭄이 들어도 항상 천석씩의 곡식을 생산한다고 한다. 여기에 방죽이 있었으며, 작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었다. 사창동 쪽까지 천수답이 있었다.
  • 통수골 : 덤박골 남쪽에서 서북으로 원송절쪽으로 나가는 골짜기의 이름. 큰 통수골과 작은 통수골이 있었다. 지금은 준공업단지 개발로 없어졌다.
  • 하봉 : 지금의 청주예술의 전당 북쪽 건너편에 있던 마을 이름. 운천동과의 경계로 인공폭포 바로 서쪽지역이됨.
  • 하송정 : 송정의 맨 아래에 있었던 마을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