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의 백제유적

시민들의 역사 휴식공간 청주백제유물전시관

청주 오송유적은 오송 제2생명과학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총 22개 지점으로 나누어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구석기시대 문화층 3개 지점을 제외한 19개 지점에서 원삼국시대와 삼국시대
집터·주구건물지·돌방무덤石室墓·움무덤土壙墓·독무덤甕棺墓 등 생활·분묘유구를 비롯하여 기타 여러 유구들이 확인되었습니다.

먼저 생활유구로 건물터에 도랑周溝을 두른 주구건물지 28기가 확인되었습니다. 도랑은 ‘ㄷ’자형·원형·타원형 등으로 다양합니다. 주구건물지 내부에서 생산과 관련된 물품들이 출토되어 생산시설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다만 28호 주구건물지는 단독으로 조영되어 있고 구조에서도 차이점이 확인되어 특별한 목적을 위해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분묘유구는 돌방무덤·움무덤·독무덤 등 750여 기의 무덤이 확인되어 청주 오송유적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4세기 중·후반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돌방무덤은 백제의 중앙세력이 지방으로 진출하면서 나타난 대표적인 무덤양식입니다. 청주 오송유적에서 돌방무덤이 확인되었다는 점은 백제가 오송 지역으로 진출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움무덤은 735기가 확인되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움무덤을 비롯하여 무덤 주변으로 도랑을 두른 주구움무덤周溝土壙墓으로 구분됩니다. 이러한 움무덤은 원삼국시대 마한지역에서 사용되었던 고유한 무덤 양식 중 하나였습니다. 이밖에 도랑을 잇닿아 무덤을 조성한 주구연접움무덤周溝連接土壙墓와 구획을 나누어 무덤을 조성한 구획움무덤區劃土壙墓도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오송 지역만의 독특한 무덤 양식이라는 할 수 있습니다. 주구연접움무덤과 구획움무덤은 이제까지 조사된 사례가 없었던 오송 지역만의 독특한 무덤 양식이라는 할 수 있습니다.
이들 무덤에서는 유개대부호有蓋臺付壺·둥근밑바리모양토기圓低鉢形土器·깊은바리모양토기深鉢形土器·굽단지臺附壺·둥근밑단지圓低短頸壺·검은간토기黑色磨硏土器·옹甕形土器·손잡이잔把杯·구멍뚫린토기有孔壺·입큰단지廣口壺·이배耳杯·세발토기三足器 등 총 1,600여 점의 토기가 출토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개대부호·둥근밑단지·둥근밑바리모양토기 또는 바리모양토기가 함께 출토되었습니다. 유개대부호와 굽단지·둥근밑바리모양토기의 경우 2세기 중·후반을 알려주는 토기입니다.
한편 구획움무덤에서 출토된 단지壺 안에서 꿩뼈·참돔뼈·말백합·피뿔고둥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서해안에서 서식하는 참돔뼈·피뿔고둥·말백합이 청주 오송유적에서 출토되면서 오송 사람들이 서해안 사람들과 교류하였음을 짐작케 합니다. 더불어 청주 오송유적의 주구연접움무덤·구획움무덤이 서해안 일대에서 확인되는 분구묘墳丘墓와 유사하여 서해안 사람들과 교류하며 무덤 양식에도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철기는 무기와 농공구農工具·마구馬具 등 모두 1,660여 점이 출토되었습니다. 특히 동병철검銅柄鐵劍은 중국 길림성에서 출토된 것과 매우 유사하여 오송 사람들의 대외교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청동기인 호랑이모양허리띠장식虎形帶鉤·말모양허리띠장식馬形帶鉤과 생산과 관련된 가락바퀴紡錘車도 출토되었습니다.
청주 오송유적은 원삼국시대부터 무덤을 축조하는데 있어 오송 지역만의 지역성이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는 오송 지역을 중심으로 생활했던 사람들의 문화가 백제의 영향으로 변화해 나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