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즈

청주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으로 잇다

기록원 소장품

삶의 기록

청주기록원에는 시민들이 기증한 많은 기록물이 있습니다. 수십 년 전 교과서, 수십 년간 모은 월급봉투, 옛 사진 등….
이 모든 것에 우리 시민들의 삶이 오롯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1960, 198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

기증자 이 준 우 (세종특별자치시 다정동)

  • 196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 사진 / 196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
  • 198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 사진1 / 198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
  • 198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 사진2 / 198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

공주교육지원청에서 교육공무원으로 퇴직한 이준우 님의 기증품입니다. 이준우 님은 교육과정 개정 때마다 새롭게 교과서가 제작되면 기존 교과서가 버려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갖고 있었고, 작은 교육박물관 설립의 계획을 갖고 있어 자료를 수집하던 중 청주기록원이 교육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1960년대와 198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 15권을 기증했습니다.

연대별

1960년대 교과서는 표지만 컬러, 내용은 흑백으로 제작했고 1980년대 전체 컬러 제작

크기
  • 기본 교과서 15㎝ × 21㎝ (자연, 체육, 도덕, 사회, 읽기 등)
  • 기능 교과서 18.7㎝ × 25.8㎝ (산수 익힘책, 미술, 말하기·듣기, 실험관찰 등)
특징

내지 첫 장에 무궁화(우리나라 꽃), 다음 장에 국민교육헌장을 실어 애국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이후부터 1과목 1책의 원칙에서 벗어나 교과 내용을 다양하게 재구성해 교육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여러 기능을 가진 다양한 종류의 교과서가 사용됐습니다.

1980년대 경찰공무원 월급봉투

  • 월급봉투  사진 / 월급봉투

김흥섭 님이 집을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했다는 월급봉투로, 1980년대 공주경찰서에서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할 때 김흥섭 님의 부인이 모아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은 버려지고 3장(1985년 11월, 1986년 11월, 1986년 12월분)만 남았습니다. 1985년 11월 월급봉투를 보면 월급액수는 17만 3500원으로, 기여금·보험료 등을 공제하면 12만 265원으로 생활해야 했습니다. 지금의 물가를 생각하면 굉장히 적은 금액입니다. 봉투에 적혀 있는 ‘근면 검소 절약하는 생활!’, ‘한 푼, 두 푼 쓸 때마다 내 수입 생각하자!’라는 문구가 눈길을 끕니다.

1970년대 청주시 방문 기념 페넌트

기증자 김 형 석 (전북 전주시 완산구)

  • 페넌트  사진 / 페넌트

전주시청에 근무하는 기록연구사 김형석 님이 기증한 것입니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관계자들이 지난 1970년대 청주시청 시장실을 방문해 받은 기념품입니다,

일제강점기 출자 증권과 보험증서 등

기증자 이 중 희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일제강점기 출자 증권과 보험증서(보험영수장 포함)
  • 1 출자증권 사진 / 출자증권
  • 2 출자증권 사진 / 출자증권
  • 3 출자증권 사진 / 출자증권
  • 4 출자증권 사진 / 출자증권
  • 보험증서 사진 / 보험증서

이중희 님이 지난 1980년대 집을 새로 지으려고 집안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출자증권과 보험증서, 보험료 영수장을 기증했습니다. 출자증권은 할아버지(이원균)가 아버지(이병준)를 위해 지난 1936년 오송금융조합에 10원을 출자한 데 따른 것이며 보험증서와 보험료 영수장은 지난 1942년 조선총독부체신국에 보험료 1원으로 계약하고 받은 것입니다. 기록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1936년 출자증권에는 본인 이름 그대로 기재돼 있지만 1942년 보험증서와 보험료 영수장에는 창씨개명된 이름이 기재돼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975년 레코드
  • 1975년 레코드 사진 / 1975년 레코드

‘흘러간 옛노래 가요반세기’ 레코드(10장)는 1975년에 제작된 것으로, 일제강점기 때의 노래가 수록돼 있습니다.

옛 책자 ‘어정규장전운’
  • 옛 책자 ‘어정규장전운’  사진 / 옛 책자 ‘어정규장전운’

‘어정규장전운’은 정확히 언제 간행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정조(正祖, 1776~1800)의 명령으로 이덕무가 편집한 것을 윤행임, 서영보, 남공철, 이서구, 이가환, 성대중, 유득공, 박제가 등이 교열해 펴낸 운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정’은 ‘임금이 정하다’, ‘규장’은 정조대왕, ‘운서’는 한시를 지을 때 필요한 운자를 정리한 사전이라는 뜻입니다.

대한제국 관보 등

기증자 남 요 섭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38년간 기록물을 수집해 제공하는 등 기록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남요섭 님이 기증한 기록물입니다. 남요섭 님은 수집한 기록물을 각종 행사에 전시하거나 필요로 하는 기관에 제공하는 등 기록 활동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수집한 기록물 중 역사적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기록과 물품 등을 기증했습니다.

대한제국 관보
  • 대한제국 관보 사진 / 대한제국 관보

광무 8년(1904년) 10월 29일 발행된 대한제국 관보 호외 ‘궁정록사(宮廷錄事)’로, 대한제국 궁정에서 기록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궁정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관보의 첫 내용은 “동궁이 직접 행하는 다례 소식을 전하며 황태자 복장과 그 외 참석자의 복장에 대해 말하며 허락을 받았다”라는 내용입니다. 두 번째는 “태의원에서 황태자비(순명효황후)가 아침의 병세는 좋아졌는데 저녁에도 어떤지 진찰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했고 저녁에도 아침과 같으니 허락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으로, 황태자비는 그해 11월 5일 사망했습니다.

국기대
  • 국기대  사진 / 국기대

국경일이 표기돼 있는 국기를 보관하는 봉투로, 특히 일제강점기 봉투에는 일본의 축제일표를 자세히 한글로도 표기해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일본 국기를 게양할 것을 홍보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 포장용지
  • ‘자’ 포장용지  사진 / ‘자’ 포장용지

포장지에 ‘자’를 ‘도량형미터법환산기’라고 했으며, 부피·무게·길이 등 법정 도량형에 대해 설명해주는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등사기
  • 등사기 사진 / 등사기

같은 글씨나 그림 등을 복제해내는 간편한 인쇄기로, 1990년대 초반까지도 관공서에서 신청서 서식 등을 여러 장 만들어낼 때 사용했습니다. 이 수집품에 주류 판매 신고서 양식이 같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세무서에서 사용됐던 듯합니다. 등사는 파라핀·바셀린·송진 등을 섞어 만든 기름을 먹인 얇은 종이를 줄판 위에 놓고 철필로 긁어서 구멍을 내어 이를 틀에 끼운 다음 잉크를 묻힌 롤러를 굴리면 잉크가 배어나와 종이에 글씨나 그림이 나타납니다.

38년간의 월급봉투

기증자 조 규 섭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 월급봉투 사진 / 월급봉투
  • 월급 지급 명세서 사진 / 월급 지급 명세서

조규섭 님이 1968년부터 2005년까지 38년간 받은 월급봉투와 월급 지급 명세서입니다. 1968년 진천군 문백면에 농림기원보 5급 을류(농업 9급에 해당)로 임용돼 받은 것부터 2005년 교육공무원으로 퇴직할 때까지 고스란히 모아온 공직생활 38년 10개월간의 기록이지요. 첫 몇 개월의 월급봉투는 부모님께 드리다보니 봉투가 사라지고 없지만 월급을 본인이 관리하면서부터는 봉투를 챙겼고 결혼 후에도 부인이 남편의 수고로움에 고마워하며 계속 모아왔다고 합니다. 봉투를 살펴보면 1988년 6월부터 현금이 아닌 통장으로 월급이 입금된 것으로 보이고 1968년 당시 본봉은 9070원, 2005년에는 199만 9700원으로 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직급의 차이는 있으나 연도별로 달라지는 공무원의 봉급을 통해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유추해볼 수 있는 자료입니다.

이장 공무원증·토지대장등본

기증자 남 성 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남성현 님이 외삼촌 댁에서 우연히 발견해 보관해오던 기록물로, 당시 사회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료라 생각해 기증한 것입니다.

이장 공무원증
  • 이장 공무원증 사진 / 이장 공무원증

이장 공무원증은 1953년에 북이면장이 발급한 것으로, 1950년대 당시에는 이장이 공무원 신분이었던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청주시기록관에 보존돼 있는 1949년 북일면과 1956년 강외면 사령부 등에 이장 구장의 임명 내용이 있으며, 1963년에 제정된 지방공무원법 제2조 2항 5호에 별정직 공무원으로 돼 있습니다.(1981년 개정 후 관련 내용 삭제)

토지대장등본
  • 토지대장등본 사진 / 토지대장등본

청원군수가 1967년 발급한 토지대장등본으로, 면적에 대한 도량형이 ‘평’으로 돼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재는 계량 단위로 ‘제곱미터(㎡)’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일반적으로 건물이나 토지의 면적을 말할 때 ‘평’을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 토지대장등본을 통해 우리가 현재에도 들을 수 있는 ‘평’이라는 단위가 1960년대에 사용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63년 계량법 제11조에 의해 거래·증명(證明)에 법정계량 단위 외에는 (건물·토지 제외) 쓰지 못하도록 규정했으며, 1982년 개정된 계량법시행령 부칙에 1983년 1월 1일부터 건물·토지까지도 법정 계량 단위를 사용하도록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