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거리

매화꽃이 피는 꽃천지 가덕
가덕면소개 마을안내 금거리

가덕면 금거리를 소개합니다.

위치

금거리 사진

금거리는 면의 북부에 위치하여 동은 내북면 염둔리, 서는 병암리, 남은 내암리, 북은 상야리에 접해있는 산촌마을이다.

연혁

금거리는 본래 청주군 남일상면의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금인리, 증 거동과 병암리, 송정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금인과 증거의 이름을 따서 금거리라해서 가덕면에 편입되었다.
그후 1985년에 양지말, 음지말, 탑거리를 1리로 증거울,신개촌(주막거리)을 2리로 분 리하였다.

자연마을

  • 증거동 : 증거울은 김거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 신개촌 : 신개촌은 구주막거리이며 증거울 북동쪽 청주~미원간 국도변에 있는 마을.
  • 음지말 : 신개촌 동쪽에 있는 마을.
  • 탑거리 : 신개촌 북동쪽 음지말 입구에 있는 마을
  • 양지말 : 음지말 동쪽에 있는 마을 .

기타지명

  • 소롱골 : 짐인장이 동남쪽에 까치배와 짐인장이 경계에 있는 골짜기.
  • 절골 : 소롱골 안에 있는 골짜기. 전에 절이 있었다.
  • 우슴터 : 점인장이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우슴이라는 중이 살았다.
  • 진막골 : 우슴터 동쪽에 있는 골짜기.
  • 모종날망 : 양지말 뒤산에서 우슴터로 넘어가는 고개.
  • 장바탕 : 진막골 밑에 있는 펀던. 전에 초군들이 장을 쳤다.
  • 장군터 : 양지말 동북쪽에 있다.
  • 옷샘 : 장군터에 있는 샘. 수원이 좋고 湧泉水이며 물이 매우 차다. 지금은 경지정리가 되어서 없어졌다.
  • 석골 : 金居里 상여집이 있는 골짜기
  • 색시바위 : 안산에 있는 험한 바위.
  • 작은고개 : 장바탕에서 된내기로 가는 고개. 전에 짐인장이의 나무를 하러다니던 걸.
  • 큰고개 : 작은고개 위쪽에 있는 가파른 고개.
  • 뒷산 : 양지말 뒷산.
  • 군지정보호수 : 金居里 110번지선에 있는 보호수로 350여년의 수령을 가진 나무.
  • 논틀 : 짐인장이 북쪽에 있는 들.
  • 말채들 : 짐인장이 서북쪽에 있는 들. 밭이 많으며 돌 다무락이 많았으며 전에 말채나무 古木이 있었다.
  • 구례들 : 양지말과 음지말 사이에 있는 들.
  • 살구징이들 : 증거울 서북쪽에 있는 들.
  • 능고개 : 증거울에서 상검으로 가는 고개.
  • 오리성골고개 : 증거울에서 오리성골로 가는 고개.
  • 대상우들 : 증거울 앞 동쪽에 있는 들. 밭이 많다.
  • 안산 : 증거울 동쪽에 있는 산.
  • 횟돌배기 : 안산 끝에 횟돌(石被岩)이 있어 청주석회광업소에서 개발하여 석분을 생산한다.
  • 뒤산 : 증거울 뒤 남쪽에 있는 산. 石灰岩山.
  • 금암양달 : 골안입구 서쪽 펀던.
  • 샘 펀던 : 굴안 중간 사이에 있는 펀던.
  • 진굴멍 : 골안 막바지에 있는 골짜기.
  • 골안 : 증거울 뒤 남서쪽에 있는 큰 골짜기.
  • 두루봉 : 작암리, 화림, 증거울, 경계를 이룬 봉우리 세부측량시 기점 표시가 있다.
  • 구주나무골 : 고동굴멍 동쪽에 있는 골짜기.
  • 고동굴멍 : 증거울 남쪽에 있는 굴짜기. 고동굴멍을 넘어가면 퉁점으로 간다.
  • 대나무골 : 증거울 남쪽에 있는 골짜기.
  • 토끼골 : 대나무골 밑에 있는 골짜기. 전에 토끼가 많았다.
  • 짚흔골 : 토끼골 다음 골짜기. 골짜기가 길어서 짚은골이라 한다.
  • 둘째골 : 짚흔골 다음 골짜기.
  • 첫골 : 증거울에서 골안으로 올라가는 동쪽 첫 골짜기.
  • 아야바골 : 증거울 동쪽에 있는 골짜기.
  • 용굴 : 증거울 뒤산에 있는 石灰岩山에 있는 동굴 굴이 깊다.
  • 산지당 : 짐인쟁이 동남쪽에 있는 뒷산 중턱에 있다. 전에 짐인장이에서 산제를 지내던 곳.
  • 마을회관 : 1994년에 양지말에 金居里 1里 마을회관을 建立하여 金居里 1里 敬老堂을 겸해 쓰고 있다. 1995년에는 신개촌, 즉 증거울 入口에다 金居里 2里 마을회관 겸 金居里 2里 敬老堂을 建立하였다.
  • 內岩川 : 짐인쟁이 마을 앞을 흐르는 내.
  • 증거울방죽 : 증거울 북쪽에 있는 못.
  • 新開村 : (신개들)(주막거리) 횟돌배기의 石灰岩을 청주석회광업소에서 개발을 하면서 주막거리가 번창해지며 인구가 증가되고 가구가 늘음으로 언제부터인가 新開村(신개들)으로불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