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및연혁

행복한 우암동!
우리동소개 유래및연혁

청주군 북주내면의 지역으로서 덧벌 바깥쪽이 되므로 바깥덧벌 또는 외덕평(外德坪) 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외덕리(外德里)라 하고 1935년에 청주읍에 편입되면서 우암산과 용암사(龍岩寺)의 이름을 따서 우암동으로 고쳤다

네모배기샘/네모샘

‘네모배기샘’은 우암동에 있는 샘이다. ‘네모샘’이라고도 한다. 현재 동암파출소에서 청주대학교 정문 쪽으로 난 도로 옆에 묻혀 있다. 정확히는 현재의 삼성하이퍼마켓 옆이 된다. 샘이 도로에 있어서 물길을 내어 옆으로 옮겨 놓았으나 지금은 폐쇄되어 볼 수 없다. 옮겨 놓은 자리에 ‘덕벌네모샘개수기념비’가 서 있다.

‘네모배기샘’은 ‘네모배기’와 ‘샘’으로 분석하여 이해할 수 있다. 선행 요소 ‘네모배기’는 다시 ‘네모’와 ‘배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네모’는 ‘사각형으로 되어 있는 모양’을 가리킨다. ‘네보벙’, ‘네모실’ 등에서 보듯 ‘네모’는 지명의 선행 요소로 간혹 나타난다. ‘배기’는 ‘장승배기’, ‘바위배기’, ‘참나무배기’ 등에서 보듯 어떤 대상이 박혀 있는 지명에 적극적으로 나타난다. 나무나 돌을 이용하여 샘 주변을 네모 모양으로 둘렀기에 ‘네모배기’란 말이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네모배기’는 ‘샘’의 현상을 지시하는 역할을 한다. 샘이 네모난 모양이어서 그 형상에 기초해 ‘네모배기샘’이라 명명한 것으로 보면 된다. 네모난 샘이어서 그저 ‘네모샘’이라고도 한다.

망골

‘망골’은 우암산 자락에 딸려 있던 골짜기이다. 지금의 청주대학교 부지에 해당한다. ‘망골’이라는 지명은 ‘망’과 ‘골’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골’이 ‘골짜기’인 것은 분명하나, ‘망’의 어원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 ‘망골’의 유래도 밝히기 어렵다. ‘망골’은 아주 흔한 골짜기 이름이다. 전국에 ‘망골’이라는 지명이 수없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그 유래설도 각양각색이다. ‘망을 보던 골짜기’, ‘망아지가 뛰어가는 모양의 골짜기’, ‘토지가 아주 메마른 골짜기’,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골짜기’, ‘망하지 않은 이가 없는 골짜기’, ‘지형이 막혀 있는 골짜기’등의 유래설이 전한다.
이들 중에서 ‘망을 보던 골짜기’라는 설이 유세하다. ‘망골’을 이렇게 해석한다면, ‘망골’의 ‘망’은 ‘望’이 된다. 그런데 ‘망골’의 ‘망’을 ‘望’으로 보더라도 ‘동정을 살피는 일’의 ‘望’이 아니라 ‘바라다’의 ‘望’으로 보고 그 유래를 찾을 수도 있다. 이 골짜기에 바람이 잦고 또 세게 불어 ‘바람골’이라 했는데, ‘바람골’의 ‘바람’을 ‘風’의 ‘바람’이 아니라 ‘望’의 ‘바람’으로 잘못 이해한 뒤 ‘바람골’을 한자화하여 ‘망골’로 바꾸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가파른 골짜기여서 ‘벼랑골’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랑골’을 거쳐 ‘바람골’로 변하자 ‘바람’을 ‘望’으로 오해한 뒤 ‘바람골’을 한자화하여 ‘망골’로 바꾸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망’을 어떤 식으로 보든 ‘망을 보던 골짜기’라는 설은 설득력이 약하다.
이들 여러 유래설 중에서 그런대로 주목되는 것은 ‘지형이 막혀 있는 골짜기’라는 설이다. 이 설에 따르면 ‘망골’은 ‘막골’의 변형이 된다. ‘막골’은 ‘막다른 곳에 있는 골짜기’의 뜻이다. 골짜기가 막혀 있거나 막바지에 있는 골짜기 ‘막골’이다. 그런데, 문제는 음운 규칙상 ‘막골’이 변하여 ‘망골’로 나타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다만, ‘망골’과 ‘막은골’이라는 지명이 함께 이는 지역이 있어 ‘망골’의 ‘망’과 ‘막-[막]의 관계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한편, ‘망골’을 ‘만골’의 변형으로 보고, ‘萬’ 또는 ‘滿’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망골’과 ‘만골’이 함께 쓰이는 지역에서는 ‘망’을 ‘만’의 변형으로 이해하고 ‘망골’을 골짜기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청주시 용암동의 ‘망골’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먹바위

‘먹바위’는 지금의 청주대학교 내에 있는 바위이다. 바위가 ‘먹’처럼 시커먼 색을 띠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에는 이 바위 위에서 동네 아낙들이 모여 빨래를 했다고 한다. 먹바위가 빨래터였던 것이다.

미나리광/미나리꽝/미나리깡

‘미나리광’은 우암동에 있는 마을이다. 현재의 동암파출소 북쪽에 있는 주택지 일대를 가리킨다. ‘미나리꽝’, ‘미나리깡’이라고도 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미나리강’으로 발음하기도 한다. ‘미나리꽝’은 ‘미나리광’의 된소리 어형이고, ‘미나리깡’은 ‘미나리강’의 된소리 어형이다. 그리고 ‘미나리강’은 ‘미나리광’의 변형으로 추정된다. ‘미나리광’은 ‘미나리’와 ‘광’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광’의 어원을 분명하지 않다.

혹시 한자 ‘壙’(송장을 묻기 위하여 판 구덩이) 또는 ‘鑛’(광물을 파내기 위하여 판 구덩이)이 아닌가 추정해 본다. ‘미나리꽝’이 땅이 걸고 물이 많이 괴는 물 구덩이이기 때문이다. ‘왕골꽝’이 ‘왕골이 많이 자라는 웅덩이 같은 곳’을 지시한다는 점에서도 ‘미나리광’의 ‘광’을 ‘물이 괴는 웅덩이’로 보아 무리는 없어 보인다.1) 지역에는 미나리를 대량으로 생산하던 넓은 논이 있었다. ‘미나리광’이라는 지명은 이로써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택지 개발로 ‘미나리광’은 없어졌다. 미나리를 심는 논은 사라졌지만 ‘미나리광’이라는 이름은 마을 이름으로 전용되어 아직도 쓰인다. 미나리를 재배하던 논을 중심으로 마을이 생겨나자 논의 이름을 빌어 그 마을을 그렇게 부른 것이다.

벌/외덕평(外德坪)/외덕리(外德里)

‘바깥덕벌’은 우암동 동암파출소 앞 동네를 가리킨다. ‘외덕평’(外德坪), ‘외덕리’(外德里)라는 한자 지명을 쓰기도 한다. ‘바깥덕벌’이라는 이름은 ‘바깥’과 ‘덕벌’이 결합된 어형이다. ‘덕벌’은 내덕동과 우암동 사이에 걸쳐 있는 마을이다. 이 ‘덕벌’의 바깥쪽에 위치한 마을이 ‘바깥덕벌’이다.

‘외덕평’(外德坪)은 ‘바깥덕벌’을 한자화한 지명이며, ‘외덕리’(外德里)는 ‘외덕평’(外德坪)의 ‘외덕’(外德)만 따다가 ‘평’(坪)대신 ‘동네’를 갈키는 ‘리’(里)를 붙인 지명이다.

비석거리(碑石)

‘비석거리’는 우암동에 있는 마을이다. ‘비석거리’의 ‘비석’은 ‘碑石’이다. ‘비석’은 큰 길거리에 세워 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비석거리’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비석을 세워 놓은 큰 길거리’를 가리킨다. 지역에는 지금 볼 수 없지만 선정비(善政碑)가 여럿 서 있었다고 한다. ‘비석거리’는 선정(善政)을 알리는 비석이 줄줄이 서 있던 거리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거리 주변에 마을이 들어서자 거리 이름으로 마을 이름을 삼아 그 마을을 ‘비석거리’라 한 것이다. 전국에 ‘비석거리’라는 지명이 널리 분포한다. 주로 길 이름으로 쓰이지만, 마을이나 들 이름으로 쓰이기도 한다.

서답골

‘서답골’은 우암산에 있던 골짜기이다. 지금의 삼일아파트와 한신신세대아파트 사이가 된다. ‘서답골’이라는 지명은 ‘서답’과 ‘골’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서답’은 충청 방언에서는 ‘개짐’(월경 샅에 차는 헝겊)을, 평안,경상,제주 방언 등에서는 ‘빨래’를 뜻한다. ‘개짐’보다는 ‘빨래’가 더 일반적인 의미인데, ‘개짐’도 일회용 월경대가 없던 시절에는 ‘빨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서답골’의 ‘서답’은 일반적인 의미인 ‘빨래’로 해석된다. ‘골’은 ‘골짜기’의 뜻이다. 그러니 ‘서답골’은 ‘빨래를 하는 골짜기’로 해석된다. 아마도 주변 마을 아낙들이 이곳 골짜기에 모여 빨래를 했기 때문에 ‘서답골’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국에 ‘서답골’이라는 골짜기가 여러군데 확인된다. ‘서답’을 이용한 지명으로 ‘서답골’이외에 ‘서답나드리’, ‘서답내’, ‘서답바위’, ‘서답보’, 등도 있다. 이들은 ‘빨래를 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공통된다.

서답바위

‘서답바위’는 우암산 서답골에 있던 바위이다. ‘서답’은 ‘빨래’의 뜻이므로 ‘서답바위’는 ‘빨래를 하는 바위’로 해석된다. 이곳에는 바위가 많았다고 하는데, 여기에 있는 바위에 빨랫감을 놓고 방망이로 두들겨 가며 빨래를 하였기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지역에 따라 ‘서답바우’, ‘서답방우’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들에는 ‘빨래터로 이용되는 바위’라는 유래설이 결부되어 있다.

서답바위도랑

‘서답바위도랑’은 서답골의 서답바위에 흐르던 개울이다. 서답골에 있는 서답바위로 계곡물이 흘러갔는데, 그 계곡물이 흐르는 줄기를 ‘서답바위도랑’이라 한 것이다.

수반들/수안들

‘수반들’은 우암동과 내덕동에 접한 무심천의 바깥쪽에 있던 들이다. 현재의 청주농고와 청주동부경찰서 일대가 된다. ‘수안들’이라고도 한다. ‘수반들’은 ‘숲안들’의 변형이다. 합성어의 형태소 경계에서 ‘ㅍ'이 대표음 ‘ㅂ’으로 발음되자 ‘숲안들’이 ‘수반들’로 나타난 것이다. ‘숲안들’의 ‘숲’은 구체적으로 용화사 북쪽과 지금의 청주농고 사이에 조성되어 있던 ‘북숲’을 가리킨다. ‘북숲’은 청주의 북쪽에 위치한 큰 숲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청주의 북쪽이 허하기에 두둑이 잘 든다 하여 숲으로써 기(氣)를 보충해야 한다는 풍수지리 사상에 기초하여 이곳에 숲을 조성하였다고 한다.2) ‘숲안’의 ‘숲’이 ‘북숲’이기에 ‘숲안들’은 정확히 ‘북숲 안쪽에 있는 들’로 해석된다. 곧, ‘북숲’의 안쪽에 위치한 들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안들’은 얼핏 ‘숲안들’에서 제1음절의 받침 ‘ㅍ’이 탈락한 어형처럼 보이지만, 실은 ‘숲안들’과는 무관하다. ‘수안들’의 ‘수’가 ‘숲’에서 받침이 탈락한 어형이 아니라 ‘숲’을 뜻하는 중세국어 ‘수'의 잔형이기 때문이다.3) ‘수안들’의 ‘수’가 ‘숲’의 뜻이기에 ‘수안들’은 ‘수반들’ 및 ‘숲안들’과 그 의미가 같다.

신선바위(神仙)

‘신선바위’는 우암산에 있는 바위이다. 신선이 내려와 놀다간 바위여서 붙여진 이름이라 설명한다. 전국에 ‘신선바위’라는 바위 이름이 아주 많은데 대부분 이와 같은 유래설이 결부되어 있다.

아래밤고개

‘아래밤고개’는 예전의 청도극장을 중심으로 북쪽에 형성된 주거지 일대를 가리킨다. ‘아래’와 ‘밤고개’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밤고개’는 내덕동에 있는 마을이다. 이 ‘밤고개’아래에 있는 마을이 ‘아래밤고개’가 된다. ‘밤고개’앞에 ‘아래’를 붙인 것은 이 마을이 ‘밤고개’의 남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방위 개념상 북은 위쪽을, 남은 아래쪽을 지시한다. ‘밤고개’의 북쪽에 조성된 마을은 ‘위밤고개’라 하여 ‘아래밤고개’와 구별한다. ‘웃밤고개’는 내덕동에 있다.

아버지바위

‘아버지바위’는 우암산 관음사 위에 있는 바위이다.

양지뜸

‘양지뜸’은 우암동 네모배기샘 동편에 있는 마을이다. ‘양지’와 ‘뜸’이 결합된 어형이다. ‘양지’는 한자어 ‘陽地’이다. ‘양지뜸’을 비롯하여 ‘양지말’, ‘양지골’등에서 보듯 ‘양지’는 마을 이름의 선행 요소로 아주 활발하게 쓰인다. ‘뜸’도 ‘골뜸’, ‘마뜸’, ‘음지뜸’ 등에서 보듯 지명의 후행 요소로 적극적으로 쓰인다. 지역에 따라 ‘듬, 담, 땀, 떰, 똠, 뚬, 더미, 두미 ,대미, 드메’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들 중 ‘듬’이 그 본래의 원형에 가깝다. 다른 것들은 ‘듬’의 이형태(異形態)로 간주할 수 있다.

이 ‘듬’의 기원적 의미는 ‘圓’(원) 또는 ‘四圍’(사위)이다. ‘原’의 의미를 지니는 ‘듬’이 적용 범위를 넓혀 그러한 특징적 모양을 하고 있는 대상에 적용된 것이 마을 이름으로서의 ‘듬’이다. 마을 이름으로서의‘듬’은 ‘한 동네 안에서 몇 집씩 따로 한데 모여 있는 구역’을 가리킨다. 특히, 산이나 골짜기와 같은 큰 자연물로 둘려 있는 둥근 분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을 ‘듬>뜸’이라 한다. 그러니 ‘양지뜸’은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로 해석된다. 몇 집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 햇빛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붙어진 이름이다.

‘양지뜸’이라는 지명은 전국에 대단히 많다. 지역에 따라서는 ‘양지땀’, ‘양지똠’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양지뜸’은 ‘양지말’이나 ‘양달말’이라는 지명과 비교된다. ‘양지뜸’보다 ‘양지말’이나 ‘양달말’이 조금 큰 마을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옹기점

‘옹기점’은 옹기를 팔던 곳이다. 예전의 청도극장 뒤편을 가리킨다. 옹기를 파는 가게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국에 ‘옹기점’이라는 지명이 대단히 많다. 주로 마을 이름으로 쓰이고, 간혹 들이나 터 이름으로도 쓰인다. 지역에 따라서는 ‘옹그점’ 또는 ‘옹구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옻샘

‘옻샘’은 우암산 우회도로 밑에 있는 샘이다. 질 좋은 약수가 나는 샘으로 지금도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옻샘’이라는 지명은 ‘옻’과 ‘샘’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옻’은 옻나무 진이 피부에 닿아 발생하는 접촉성 피부염이다. 빨갛게 붓거나 물집이 생기거나 하여 미우 가려운 것이 특지이다. 주변에 옻나무가 많았던 시절 ‘옻’은 흔한 피부병이었다.

옻이 오르면 찬물로 세척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찬물이 피부의 열을 식히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마땅한 대처 약품이 없었던 시절에는 찬물 세척이 훌륭한 민간요법이었을 것이다. 그 찬물 중에서도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찬물을 제공하는 ‘샘물’이 특효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옻’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는 찬물이 나오는 샘을 ‘옻샘’이라 한 것이다.

전국에는 ‘옻샘’이라는 이름을 가진 샘이 수없이 많다. 이 ‘옻샘’은 일반 샘보다 물이 맑고 깨끗하며 특히 여름철에 찬 것이 특징이다. ‘옻’과 같은 피부병을 낯게 할 정도로 약효가 있는 샘에 이러한 이름이 붙어 있다. 일종의 ‘약샘’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옻샘’은 ‘옻을 고칠 수 있는 양질의 물이 나는 샘’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지역에 따라서는 ‘옻샘’을 ‘옻나무가 있는 샘’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샘 주변에 옻나무가 있어서 이러한 이름이 나왔다는 것이다. ‘옻나무골’이라는 지명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면 ‘옻샘’이 ‘옻나무샘’일 가능성도 있으나, ‘옻샘’은 아무래도 그 약호와 관련해서 생겨난 이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암산/와우산

‘우암산’은 청주 동쪽에 있는 산이다. 우암동을 비롯하여 내덕동, 대성동, 용담동, 명암동 지역에 두루 걸친다. ‘우암산’은 ‘우암’과 ‘산’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우암’은 ‘牛岩’으로, ‘소바위’에 대한 한자 지명이다. 우암산 꼭대기에서 남쪽으로 뻗은 등성이에 ‘알바위’ 또는 ‘소바위’, ‘암소바위’라는 거대한 암괴가 있다.4) 이 ‘소바위’가 있는 산을 ‘소바위산’이라 하다가 ‘소바위’를 한자로 바꾸어 ‘우암산’(牛岩山)이라 한것이다. 전국에 ‘우암산’이 여러 군데 있는데 대부분 ‘소바위산’이라는 속지명과 함께 쓰인다.

그런데 ‘우암산’(牛岩山)이라는 명칭보다 ‘와우산’(臥牛山)이라는 명칭이 더 먼저 쓰인 듯하다. 옛 문헌에는 ‘牛岩山’은 보이지 않고 ‘臥牛山’이 나온다.5) ‘와우산’은 산이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청주의 남쪽 외곽에서 이 산을 쳐다보면 흡사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와우산’(臥牛山)이라는 산 이름은 전국에 대단히 많다. 지형이 ‘와우형’(臥牛形)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설명한다.

‘우암산’에는 이외에도 ‘대모산’(大母山), ‘장암산’(壯岩山), ‘당이산’(唐이山)6)등의 이름이 있어 왔다. ‘바위’와 관련된 이름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음지뜸

‘음지뜸’은 우암동 네모배기샘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네모배기샘 동편에 있는 ‘양지뜸’과 정반대에 위치한다. ‘음지뜸’은 ‘음지’와 ‘뜸’이 결합된 어형이다. ‘음지’는 한자어 ‘陰地’이고 ‘뜸’은 ‘외떨어진 작은 마을’을 지시한다. 따라서 ‘음지뜸’은 ‘음지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로 해석된다.이 마을이 북쪽인 음지에 자리 잡고 있어서 생겨난 이름이다. 전국에는 ‘음지뜸’이라는 마을 이름이 대단히 많다. 지역에 따라서는 ‘음지땀’, ‘음지뜸’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