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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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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소리
서도소리 중요무형문화재 29 [서울전역]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 즉 서도지역에서 불리워진 민요나 잡가 등을 말하며, 언제부터 불리워졌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서도소리는 평안도 민요와 황해도 민요, 서도잡가, 한시를 읊은 시창(詩唱)으로 나눈다.

평안도 민요에는 수심가, 엮음수심가, 긴아리, 자진아리, 안주애원성 등이 있는데, 조선 전기부터 서도지방 사람들의 벼슬길이 막히자 그 설움을 푸념으로 읊은 수심가가 가장 유명하다. 평안도 소리는 일반적으로 레, 미, 솔, 라, 도의 다섯 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떠는 음인 ·라·에서 완전 5도 내려가는 것으로 선율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대체로 사설이 길며 장단도 일정하지 않아 적당히 사설에 맞추어 치는 것이 특징이다.

황해도 민요에는 긴난봉가, 자진난봉가, 병신난봉가, 사설난봉가, 산염불, 자진염불, 몽금포타령 등이 있는데 난봉가와 산염불이 유명하다. 황해도 소리는 평안도 소리와 함께 서도소리의 일반적인 선율형태를 나타내고 있으나 그 선율진행에 있어서는 조금 다르다. 또한 평안도 민요에 비하여 일정한 장단을 가지고 있으며, 밝고 서정적이다.

서도잡가는 서도입창에 반대되는 말로서 앉아서 부르는 소리이며, 공명가, 사설공명가, 초한가, 제전, 추풍감별곡 등이 있는데 이 중 공명가가 유명하다. 서도잡가는 긴 사설을 가지고 있으며, 장단은 노래말의 자수에 따라 불규칙적이다. 끝을 여밀 때는 반드시 수심가조로 끝나는 공통점이 있다.

서도소리의 가락은 흔히 수심가토리라고 하여 대개 위에서부터 질러내며, 위의 음은 흘려 내리고, 가운데 음은 심하게 떨며, 아래의 음은 곧게 뻗는 특이한 선율 진행을 보여주고 있어서 이들 소리를 느긋하게 부르면 구슬픈 느낌을 주게 된다. 서도소리 창법은 좀 특이한데 콧소리로 얇게 탈탈거리며 떠는 소리, 큰소리로 길게 쭉 뽑다가 갑자기 속소리로 콧소리를 섞어서 가만히 떠는 소리 등이 특징이다.

서도소리는 예로부터 대륙과 인접한 거친 풍토에서 북방 이민족과 함께 겨루며 굳세게 살아온 서도지방민들의 생활속에서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소리로, 노랫가락에도 그들의 생활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현재 서도소리에 지정되어 있는 것은 평안도 민요인 ·수심가·, 시창인 ·관산융마·, ·배뱅이굿· 등이다.
금산물페기농요
금산물페기농요 도무형문화재 16 [충남 금산군]
금산 물페기농요는 비만 조금 오면 심하게 물이 잠겨 물페기라고 부른데서 연유한 것이다. 충청남도에서는 드물게 전승되어 오는 소리로 평야지대와 산악지대의 소리가 결합된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내용은 토신고사(土神告祀), 모심는소리, 두렁밟기, 아시매기, 두렁고치기, 재벌매기, 방아소리, 쌈싸는소리, 장원놀이 등으로 구분된다. 두레가 끝난 후 마을 입구에 모여 토양신(土神)에게 제사를 지내고 모를 심으면서 모심는소리를 부른다. 모를 심고 난 뒤 쥐, 두더지 등이 논두렁을 뚫지 못하게 두렁밟기를 한다.

논의 김을 매면서 부르는 노래를 일명 얼카 산이야라고도 한다. 초벌논매기 후 두렁이 무너졌을 때의 상황을 부른 노래가 두렁고치기라고 한다. 방아소리는 추수를 하여 방아를 찧는 소리를 말하며, 쌈싸는소리는 논을 다 매갈 무렵에 모여들며 에염을 싸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마지막으로 그 해에 농사를 제일 잘 지은 사람을 뽑아 소에 태우고 도는 것을 장원놀이라고 한다.

금산 물페기농요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지역적 특성을 살리고, 농사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과정을 노래와 동작으로 표현한 것이다. 금산군 부리면에 살고 있는 예능보유자 양승환씨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익산목발노래
익산목발노래 시도무형문화재 1 [전북 익산시]
「목발노래」는 익산지방에서 산발적으로 불리어 내려온 산타령, 등짐노래, 지게목발의 노래, 작대기 타령, 둥당기 타령, 상사소리등 6개의 노래를 한데 묶어 그 앞 뒤의 차례와 조리를 밝혀 붙여진 노래의 명칭이다.

박갑근은 농역(農役)의 피로를 풀고 흥취를 돋구어 이른바 농경문화의 꽃으로 비유되어온 귀중한 농요(農謠)들이 자꾸만 그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농요의 보전과 전승을 위하여 1972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全國民俗藝術競演大會)에 출연했던 50여명의 동료를 규합 익산민속예술농요회(益山民俗藝術農謠會)를 조직 운영하면서, 그가 사는 익산시 삼기면 오룡리를 중심으로 흩어져 묻혀 있는 인근의 농요와 생활민요 등을 적극적으로 발굴 보전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24명의 인원으로 「익산목발노래보존회」를 구성하였다.
1923년 박해명(朴海明)씨의 3남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청년기에 풍장을 맡게 되면서 어른들의 권유에 따라 시조와 창을 익혔다. 그는 여러곳의 각종 모임에 불려 다니면서 상당한 수준을 유지하게 되어 원숙한 농요잔치의 한 마당을 이루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삼기, 금마, 함열, 낭산 등의 28명이나 되는 풍장꾼들을 모아 「위계(偉契)」를 조직 운영하면서 생활민요 등을 발굴하고 이를 체계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가 이끌어 낸 「익산목발노래」는 1972년 제1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받으면서 두각을 나타냈고, 1977년 제1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익산삼기농요」가 국무총리상을 수상하였다.
남도들노래
남도들노래 중요무형문화재 51 [전남전역]
남도들노래란 전라남도 진도지방의 농부들이 농사일을 할 때 부르는 노래를 가리키는데 크게 논일 노래와 밭일 노래로 이루어진다. 모판에서 모를 찔 때에는 모뜨는 소리를 부르고, 논에 모를 심을 때에는 못소리를 부르며 논에서 김을 맬 때에는 절로소리를 부른다. 김매기가 끝나고 농부들이 마을에 들어올 때에는 길꼬냉이를 부른다. 여흥으로 진도아리랑을 부르기도 한다.

농부들이 들일을 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은 예로부터 어느 고장에서나 볼 수 있었으나 전라도 서남지역의 노래는 특히 그 종류가 많고 음악성도 뛰어나다. 또한 진도군의 논매는 소리는 전라남도의 다른 지방에 비해 단순한데, 이는 토질이 비옥하여 호미로 논을 맬 필요없이 손으로 매면 족하기 때문이다. 밭일 노래는 콩밭을 매며 부르는 콩밭노래, 목화밭 일을 하면서 부르는 미영밭노래가 있다.
남도들노래는 향토색이 짙고 가락이 매우 흥겨운 노래이다. 남도들노래란 호남지방의 농요라는 뜻이며, 남도들노래 가운데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의 농요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농부들이 들일을 하며 농요를 부르는 것은 예로부터 어느 고장에서나 볼 수 있으나 특히 전라도 서남지역의 농요는 그 종류가 많고 음악성도 뛰어나다.

남도들노래의 고장, 진도군 지산면에서는 논농사에 농부들이 많은 농요를 부른다. 농부들이 모판에서 모를 찔 때에는 모뜨는 소리를 부르고 논에 모를 심을 때에는 못소리를 부르며 논에서 김을 맬 때에는 절로소리를 부르며 김매기가 끝나고 농부들이 마을에 들어올 때에는 길꼬냉이를 부른다.

모뜨는 소리에는 한배에 따라 느린 한배의 긴 모뜨는 소리와 빠른 한배의 잦은 모뜨는 소리가 있다. 봄철에 모자리(모판)에다 씨를 뿌려 자라게 되면 이것을 떠서(뽑아서) 논에 심게 되는데 먼저 여러 농부들이 모판에 달라붙어 모를 뜬다. 이 때 소리를 메기고 받는다. 처음에는 중모리장단으로 긴 모뜨는 소리를 부른다.

선소리꾼이 두 장단으로 앞소리를 메기면 농부들이 모를 찌며 여럿이 함께 두 장단으로 뒷소리를 여기야 허허 여허 헤라/ 머한난 디요 하고 받는다. 이 소리의 선율은 육자배기토리로 구슬프게 들린다. 끝판에는 잦은 모뜨는 소리로 몰아간다. 도드리장단 두 장단을 메기면 두 장단을 '에헤야 여기여라/ 머난디가 산안지라' 하고 받는다. 잦은 모뜨는 소리는 경토리(경조, 京調)에 가까워서 밝고 흥겹다. 모판에 모를 떠서 논에 여기저기 던져놓고 여러 농부들이 늘어서서 못방구(모북)를 치고 못소리(상사소리)를 메기고 받으며 모를 심는다.

처음에는 긴못소리를 부른다. 선소리꾼이 못방구를 치며 중모리 두 장단에 앞소리를 메기면 여러 농부들이 모를 심으며 다 함께 중모리 두 장단에 뒷소리를 '여기야 허허 여- 헤라/ 상사로세' 하고 받는다. 긴못소리는 육자배기토리로 되어 있는데 구슬프게 들린다. 끝판에는 자진모리를 자진모리장단으로 몰아간다. 두 장단을 메기면 두 장단에 '어라 뒤여 저라 뒤여/상사로세' 하고 뒷소리를 받는다. 뒷소리 또한 육자배기토리로 되어 있는데 흥겨운 느낌을 준다.

모가 자라면 여러 농부들이 풍장을 치고 절로소리를 부르며 김을 맨다. 처음에는 불규칙한 박자로 된 진양장단으로 경토리에 육자배기토리가 섞인 긴 절로소리를 메기고 받으며, 중간에는 단중모리 장단에 육자배기토리로 된 중 절로소리를 메기고 받고, 끝판에는 세마치장단에 경토리로 된 잦은 절로소리를 메기고 받는다.

마지막에 농부들이 마을로 들어올 때에는 상머슴을 소에 태우고 풍장을 치며 느린 세마치장단에 경토리로 된 길꼬냉이를 흥겹게 메기고 받으며 들어온다. 남도들노래는 향토색이 짙고 가락이 매우 흥겨운 농요이다.
진도다시래기
진도다시래기 중요무형문화재 81 [전남전역]
전남전역 진도다시래기보존회 우리나라 장례풍속에 가무를 행했던 기록이 고구려와 신라의 사서(史書)와 조선시대의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나타나 있다. 그리고 지금도 상여놀이가있고 상여를 장지로 운구할 때 사물을 치거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또한 지방에 따라 방상시가면(方相氏假面)을 쓰고 춤추는 곳도 있고, 비통해 하는 상주를 위로하기 위해 친구들이나 직업적인 예능인들이 웃음을 주기 위한 연극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연극놀이는 모든 지역에서 사라졌고 지금은 진도에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이른바 다시래기라는 것이 그것이다.

진도다시래기는 단골 무당들의 단체인 신청(神廳)을 중심으로 전문적인 예능인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가무극적 연극놀이이다. 다시래기는 마을에 초상이 나면 그것도 호상일 경우 동네 상두꾼들이 상제를 위로하기 위하여 연희자들을 초청하여 상두꾼들과 함께 밤을 새우고 노는 상여놀이이며, 민속가무극으로 연극성이 가장 짙은 놀이이다.

진도다시래기의 연희적 형식을 보면 음악적인 경우 다시래기소리를 비롯하여 중타령, 개타령, 경문소리, 자장가, 상여소리(생이소리)가 있고 여흥으로 불리워진 노래로는 토막소리로 하는 몇 가지의 판소리와 진도아리랑, 방아타령, 육자배기, 흥타령, 둥덩이타령, 가마소리(홀롱소리) 등의 민요와 남도들노래, 화중받소리와 같은 농요가 있다.

다시래기에 나온 춤은 사당과 중이 추는 허튼춤을 비롯하여 사당이 추는 곱사춤과 거사가 추는 봉사춤, 그리고 상여놀이를 할 때 가상제가 추는 허튼춤이 있으며 또한 진도지방의 특이한 북춤들이 연희된다. 진도다시래기의 연희순서를 보면 첫째는 가상제놀이가 있고 둘째는 거사와 사당 그리고 중들이 노는 놀이가 있다. 그리고 셋째는 상여소리, 넷째는 가래소리가 있고, 마지막 다섯째인 여흥놀이로 끝을 맺는다.
거문도뱃노래
거문도뱃노래 시도무형문화재 1 [전남 여수시]
우리 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예로부터 어업에 종사해 온 어민들이 많았으며 어로 작업중 많은 노래를 불러왔다. 그러나 어부들은 어획기에 어장을 찾아 모여드는 관계로 여러 지역간의 교류가 있었으리라 추측되나 거문도 뱃노래는 타지방 뱃노래와 섞이지 않고 순수하게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어부들이 노래부르는 것은 대개 다음과 같은 작업을 할 때다. ①닻을 올릴 때 ②노를 저을 때 ③그물을 당길 때 ④고기를 풀 때 ⑤고기를 많이 잡아 가지고 풍어기를 나부끼며 귀향할 때 등이다. 거문도 뱃노래는 「술비소리」「고사소리」「놋소리」「월래소리」「가래소리」「썰소리」등인데 「술비소리」는 배에서 쓰는 밧줄을 드릴 때 부르고 「고사소리」는 출어 전에 용왕에게 풍요를 기원하면서 부르는 일종의 주문소리이다. 「놋소리」는 노를 저어가면서 부르는 소리이고, 「월래소리」는 그물을 당길 때, 「가래소리」는 고기를 가래로 퍼낼 때, 「썰소리」는 배가 가득 차 입항할 때 부르는 소리이다.

위의 노래들은 육지의 농요에서처럼 설소리꾼이 소리를 메기면 여타의 뱃사람들이 뒷소리를 받는다. 이 거문도 뱃노래는 순박하면서도 힘찬 어민의 기질과 정서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고성농요
고성농요 중요무형문화재 84-1 [경남전역]
고성농요보존회 고성지방은 옛 소가야의 도읍지로 고성농요는 하지무렵의 모내기 이후 그 15일뒤의 아시논매기 및 맘논까지 약 두달사이에 불리워지는 노래들(1. 모찔 때의 등지, 조리자 2. 모심을 때의 등지, 더디다, 해그름소리(등지, 잦은 소리) 3. 도리깨타작 4. 삼삼는 소리 5. 논맬 때의 상사디여, 방애 6. 장원질 때의 치기나 칭칭)과 부인네들이 주로 겨울철에 하던 베짜는 작업에 관한 노래(물레노래, 베틀노래)들로 엮어져있다. 등지는 모낼 때의 긴소리로, 경상도 교창식 모노래의 고성형이다.

'조리자'와 '더디다'는 멕받형식의 잦은 소리이며 서로 선율이 같다. 조리자란 모판을 줄여 들어 가자는 의미이며 진양ㆍ함안ㆍ창녕ㆍ양산ㆍ울주ㆍ밀양ㆍ경주ㆍ칠곡ㆍ금릉군에서도 발견된다.
더디다는 전파범위가 좁지만 진주시에서도 수집된다. 삼삼는 소리와 베틀노래의 선율도 서로 동류이다. 고성농요는 경상도의 모내는 소리와 논맴소리(상사, 방애)를 전라도의 민요 창법으로 부르는 점, 모내는 소리에 아침ㆍ점심ㆍ저녁노래의 구별이 있는 점, 각종의 받음구 및 삼삼는 소리 등이 모두 경상도 모노래권의 서남지역적 특징을 말해준다.
구미발갱이들소리
구미발갱이들소리 시도무형문화재 27 [경북 구미시]
발갱이 들소리는 농요로서 논이나 밭에서 일을 하면서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노래이다. 들소리 또는 농사짓기 소리라고도 한다. 토속민요의 하나로 개인 또는 집단적으로 부르며, 지방에 따라서 노래가 달라질 수 있다.

구미 발갱이 들소리는 구미 진산동의 넓고 기름진 평야에서 일할 때 불렀던 노래이다. 이 노래의 내용에는 영남아리랑을 시작으로 나무를 하거나 풀을 벨 때 부르는 어사용, 가래질소리, 망깨소리, 목도소리가 있다. 또한 농사일을 할 때 부르던 모찌기소리, 모심기소리, 논매기소리, 타작소리가 있고, 논매기가 끝난 후에 부르는 칭칭이(쾌지나칭칭)가 있다.

구미 발갱이 들소리는 토속민요로 도시화, 산업화가 급속히 확산되어 가는 오늘날에도 비교적 그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구미에 살고 있는 예능보유자 백남진씨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중원마수리농요
중원마수리농요 시도무형문화재 5 [충북 충주시]
중원 마수리농요는 충주지방에서 옛부터 조상들이 농사를 지을 때 풍년을 기원하며 부르던 노래로 일제말기부터 그 자체가 차차 잊혀져 가던 것을 1970년대에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 마제마을 사람들에 의해 지연됨으로써 보존되게 되었다.

마수리농요의 선율은 충북만의 독특한 맛을 보여주고 있는데 구성을 보면 절우자(모찌기 노래), 아라성(모심기 노래), 긴방아, 중거리방아, 자진방아(아이 논매기 노래), 어화 굼실 대허리야(두벌 논매기 노래), 여성 노작 동요인 진방아, 중거리방아, 자진방아, 갈뜯는 노래로 구성되며, 약 60여명의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여 날라리(태평소)의 선율과 꽹과리, 북, 징 등의 타악기 리듬에 맞춰 모심기, 아이 논매기, 두벌 논매기를 마치고 여성 노작요인 방아타령, 방아찧기 노래를 여성부와 같이 하고 남녀가 어울려서 한마당 놀이로 끝나게 된다.

예능보유자(선창자)인 지남기(1926.4.10일생, 남, 지기선이라고도 불림)씨는 괴산군 불정면 웅동리 출생으로 16세때 충주시 주덕읍 신양리에 이거하다 28세 되던 해 마제마을로 이사한 후 목청이 뛰어나 농사철에는 메김소리를 담당하여 왔으며, 1960년대 이후부터 멀어져 가는 농요를 계승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여 1970년도에 이를 정비하기에 이르렀으며, 1972년에는 「탄금대 방아타령」이라는 이름으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대통령상을 수상하였으며 이밖에도 충북농악제등에서 많은 수상을 하는 등 농요의 발전에 기여해 오고 있다.

중원 마수리농요가 전승되고 있는 마제마을은 조선 세종이 인재를 구하러 지방을 행차하던중 이곳에서 말에게 물을 먹이고 쉬어 갔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비옥한 충주평야의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약 500여전에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1970년 당시에는 농가가 70여호에 이르렀으나 지금은 50여 가구만이 거주만이 거주하고 있다.
영동설계리농요
영동설계리농요 시도무형문화재 6 [충북 영동군]
설계리 농요는 영동군 영동읍 설계리에 오랜 옛날부터 구전되어 오는 농요이다. 모찌기 노래, 아시논매기(초벌매기), 두벌매기를 멕이고 받는 형식의 전형적 모형이다. 5음음계 계면조 노동요의 일종으로서 설계리 농요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생활속에서 기쁘고, 슬프고, 즐거움, 애절함을 소탈하게 호소한 내용이 담겨진 노동요이다.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전북과 경북이 인접한 관계로 농요의 선율이 복합적 색채를 띄고 있다. 전라도 소리에서 불완전하게 5음음계가 보이고 있으나 설계리 농요처럼 5음이 모두 독립된 역할을 한 예는 드물다. 이와 같은 음계는 궁중음악에서도 드문 예라고 하겠다. 이상을 보면 설계리 농요는 경상도의 음악적 요소를 가진 선율과 전라도 소리의 요소를 가진 노래를 동시에 같이 연행하고 있으며, 더하여 충청도의 여유있는 음악해석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접전지역에 위치한 설계리 농요는 3도의 음악적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독특한 음계의 선율(논매기 소리)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것은 경상도의 격한 요소와 전라도이 유장함(恨)이 담담한 모습으로 바꾸는 것이라 하겠다. 예능보유자였던 서정숙 씨와 동년배 손양기 씨가 예능을 서병종 씨와 손양기 씨의 아들 손종무 씨에게 예능을 전수하였다.
김포통진두레놀이
시도무형문화재 23 [경기 김포시]
김포 통진면에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두레놀이로 농촌공동체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놀이이다. 통진두레놀이는 농사를 짓는 전 과정을 세밀하게 놀이로서 표현하고 있으며, 특히 농요가 발달되어 흥이 절로 난다. 놀이는 입장, 볍씨뿌리기, 논갈이 및 써래질, 고사지내기, 모찌기, 모내기, 새참먹기, 물고싸움이 두레싸움으로, 김매기, 벼베기, 탈곡하기, 섬쌓기, 마무리의 순서로 진행된다.

고사지내기에서는 한 해 농사가 풍년이 들도록 기원하며 고사떡을 나누어 먹고, 모찌기에서는 메기고 받는 모찌기노래로 힘든 노동을 이겨내고 즐겁게 일하기 위해 흥을 돋운다. 새참먹기는 일하다가 새참을 먹으며 여흥을 즐기는 모습을 그리고 있어 일과 놀이가 한데 어우러짐을 보여준다. 남의 논물을 자기 논으로 대려다 들켜 물고 시비가 되어 두레싸움으로 되는데, 싸움이 곧 화합의 과정으로 이어져 결국 공동체임을 확인시켜 준다.

오늘날에는 예전과 같은 두레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통진두레놀이는 농촌사회의 공동체인 두레의 아름다운 모습을 놀이를 통해 이어가고 있다.
강릉학산오독떼기
강릉학산오독떼기 시도무형문화재 5 [강원 강릉시]
강릉(江陵) 학산(鶴山) 오독떼기는 농사를 지을 때 부르는 노동요(勞動謠)로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강릉지방에서는 신라시대(新羅時代)부터 농요(農謠)를 즐겨불렀다고 하며,『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의하면 세조(世祖)가 동해안(東海岸) 일대를 돌아보다가 오독떼기를 잘하는 사람을 뽑아 노래하게 하고 상을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오독떼기에 대한 의미(意味)와 유래(由來)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다섯번을 꺾어서 부르기 때문이라는 설, 오독떼기가 동서남북중(東西南北中)의 오독을 떼기(개척:(開拓))한다는 뜻에서 왔다는 설(요즈음도 밭떼기, 논떼기라는 말이 있음), '오'는 '신성하고 고귀하다'는 뜻이고 '독떼기'는 '들판을 개간한다'는 뜻에서 생겼다는 설, 신라때 화랑들이 강릉지방을 순역(巡歷)하면서 풍류도(風流度)를 닦을 때 부르던 노래가 곡조(曲調)만 살아서 내려왔다는 설 등이 있다.

오독떼기의 내용은 크게 모내기소리, 김매기소리, 벼베기소리, 타작소리로 구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