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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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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국악으로 맞이하는 새봄, 설레임
작성자 채세인
내용 "흥은 올리고, 스트레스는 내리고!"
오늘 공연 <오르락 내리락, 새봄산책>을 선택한 이유다.
여느 때보다도 삭막하고 정적인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이나, 오늘 공연의 보드랍고 맑은 국악의 에너지로 4월의 새봄을 기분좋게 맞이했다. 흥겹게 음악에 몸을 맡기며 묵은 스트레스까지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공연이라면, 음악인인 나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 아닌가?

공연은 항상 관람하던 대공연장이 아닌 아트홀에서 이루어져 길을 찾는 데 조금 헤맸다. 대공연장 보다는 조금 더 아담한 사이즈의 무대였고, 관객석과의 거리도 짧아 더 생동감있었다. 그래서 연주자의 표정, 풍기는 아우라, 강약의 조절과 같은 디테일한 요소를 놓치지 않고 감상하려 애썼다.



첫 곡 <봄의 서곡>은, 여느 악기보다도 '해금'의 사운드가 단연 돋보이는 곡이다.
음산하고 스산하고 축축한 분위기로 곡의 서두를 열고, 중반부에는 봄이 찾아오는 희망적인 분위기로 확 바뀌어 듣는 재미가 넘친다.
도입은 가야금의 아르페지오다. 긴장감 뿐인 정적 속에서 스포트라이트 받으며 등장하는 가야금 소리는 잔뜩 몽환적이다. 이어 대금과 거문고, 북이 차례로 들어온다. 마치 오늘 공연에 잘 왔다는 듯, 각종 국악기들이 버선 발로 나와 문 열어주며 우릴 반겨주는 것만 같다.
점차 모든 악기가 들어오고, 평조 기반의 부드러운 주선율이 곡의 중심을 세운다. 뒤이어 등장하는 해금 솔로는, 축축하고 음산한 정글에서 골똘히 연주하는 선비의 모습이 떠오른다. 여기에 피리 솔로가 추가되어 두 악기가 유니즌으로 연주하다 다시 두 선율로 갈라지는데, 마치 작은 새와 뱀이 서로 곁을 머물며 노래하는 장면이 연상된다.
2악장부터는 본격적으로 단조의 어두운 분위기로 뒤덮인다. 통념적인 '봄'의 파릇파릇한 이미지가 아닌, 음산한 숲속에 찾아오는 봄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화성적으로는 1도 화음과 4도 화음의 반복으로 진행하며 전반적으로 생동감있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매력적인 점은, 새로운 계절이 오고 갖가지 생명이 탄생함과도 동시에, 섣불리 긴장을 놓지 못하는 야생의 숲과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러다 갑자기 쨍한 대금 소리가 "내가 주인공이다!" 라고 외치는 듯 강렬하게 등장한다. 마치 꽃들이 봄 반기는 듯, 나풀나풀 춤 추는 듯한 자유로운 선율이 인상적이다.
절정에선, 놀랍게도 사물놀이패가 등장한다. 다른 악기들은 모두 사라지고 경쾌한 사물놀이가 연주되는데, 밝은 분위기의 곡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대목에선 마음 어딘가가 울컥하고 벅차오른다.
<봄의 서곡>은, 내가 재미 요소로 느낄 수 있는 최대치의 컨텐츠들을 모두 끌어다 부은 '국악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은 곡이었다.



다음은 25현가야금 협주곡, <아나톨리아, 고원에 부는 바람>이다.
슬금슬금 다가오는 가야금 아르페지오에 한껏 귀 기울이니, 이거 스케일부터가 심상치 않다. 국악에서 흔히 사용하는 음계가 아닌 중동이나 아랍의 냄새를 풍기는 스케일이 사용되는 것 같다. 재빨리 팜플렛의 곡 설명을 읽어보니 '아라빅 스케일'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마치 디즈니의 영화 알라딘, 모아나의 ost가 머릿 속을 맴돈다.
보다 생동감 넘치는 감상을 위해 무대와 가까운 거의 맨 앞 좌석을 예매했는데 이것이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이 25현 가야금 무대에서 두 번 세 번 느낄 수 있었다. 가야금 연주자가 현을 뜯는 행위 자체에 정교하고도 원초적으로 매우 몰입하고 있다는 것이 피부까지 느껴지고, 소리뿐만 아니라 연주자의 무브와 몸선으로도 음악이 느껴진다. 휘몰아치는 가락에 맞춰 박진감있게 몸을 흔들다가도 갑자기 없었던 일처럼 멈춰서고, 왼손을 격하게 떨다가도 쥐죽은 듯 작게 털어준다. 마치 춤을 추는 듯 하다.
클라이막스에서는 연속적인 셋잇단음표 속주와 적극적인 싱코페이션의 사용으로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후반부의 독주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어 감상했는데, 이 독주 선율에서 아라빅 스케일이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또 한번 곡의 정체성을 부각시키며 결말을 멋들어지게 장식했다.



양금을 접해본 경험이 전무한 나에게는, 그저 낯설고 다가가기 어려운 악기라는 인식이 전부였다.
이러한 편견이 생긴 이유 중 하나는 양금의 현이 일반적인 국악기와 같은 명주실 등이 아니라 철사 줄이라는 점이다. 대체 어떤 소리가 나길래 '서양의 금'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까?
첫인상은 서양악기 '만돌린' 소리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악기의 소리와 연주자의 움직임, 몰입도가 너무도 강렬해서 몇 분 내내 넋놓았고, 감상이나 비평 따위를 할 여유가 없이 연주 내내 충격에 사로잡혀 있었다. 양금 연주자의 움직임은 앞선 가야금 연주자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살아있었다. 가야금 연주자는 고상하게 꾸짖는 느낌이라면 양금 연주자는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여자가 정신이 반쯤 나가 격분 내는 것 같았다. 매우 짧은 한배 위에서 장면 또한 쉴 새 없이 변환되어 전반적으로 화려한 인상의 곡이었다. 두 연주자 모두 각각의 매력이 200%로 넘쳤다.
내가 미래에 가르치게 될 아이들에게는, 국악기 그리고 국악을 절대 낯설고 어려운 음악으로 새겨지지 않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의 연주를 한 번만 들어도 그러한 부정적 인식은 한순간에 바뀔 수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음악 수업은 질 좋은 음악 경험의 기회로 양껏 채워가야 할 것이다.
곡의 마지막 양금 독주 부분은 가히 신들린 것 같았다. 병마가 온통 피로 가득한 전쟁터를 뛰다니는 이미지가 그려졌다. 곡이 마치고 나는 앞으로 양금이라는 악기를 접할 때마다 반사적으로 윤은화 연주자가 떠오를 것 같다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세 번째로 관람한 국악 공연 <오르락 내리락 새봄산책>은 기대 이상의 쾌감과 전율, 아름다움을 선물해주었다. 흘러가는 가락과 하모니를 그저 흘러가도록 두는 것이 아니라 국악기와 그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 그들을 하나의 음악으로 묶어주는 지휘자까지 공연의 여러 구성요소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단순히 연주를 '듣는 것' 그 이상의 감상을 얻을 수 있었다.
만약 당신이 억압된 흥을 주체하지 못하겠다면, 또는 묵은 스트레스가 당신을 괴롭힌다면
당신에게는 지체없이 국악 공연이 필요함을 잊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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