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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

Cheongju city

문화관광

단군성전(檀君聖殿)

단군성전(檀君聖殿) 사진

소재지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저산리 산1

종류

단군성전

상세정보

단군전은 1945년에 대종교에서 조직한 단군봉찬회에서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저산리 은적산에 우리나라 국조인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제단을 만들었다가 1968년에 위패와 영정을 모신 단군사를 짓고 매년 개천절에 향사를 하였는데, 1986년부터는 유림에서 조직한 "국조단군봉찬회"에서 새로운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매년 어천제와 개천절 2회에 걸쳐 향사하고 있다.

저산성(猪山城)

소재지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저산리

종류

비지정 문화재(성곽)

상세정보

저산성(猪山城) 사진

청주와 조치원 사이의 옛길이 지나는 저산역지(指山驛址)의 북동쪽에 우뚝 솟은 해발 208m 은적산(恩積山) 정상부에 설축된 산성이다. 조선시대의 지리지에 의하면 청주의 서쪽 30리에 있으며 석축성으로서 둘레는 545척(尺)이고 성안에 우물이 1개소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성은 산정부를 둘러싼 석축의 내성(內城)과 그 북쪽 아래의 경사가 완만한 곳에 쌓은 토루형(土壘形)의 외성(外城)으로 이루어졌으며, 성벽은 토석축(土石築)으로 쌓았다. 성의 형태는 전형적인 테뫼형산성이다. 둘레는 내성이 약231.6m, 외성이 약 107.5m로 전체가 339.1m에 불과하지만 주변을 잘 감시 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내성은 중앙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중심으로 지세가 험한동쪽과 남쪽은 기반을 다져 외벽을 석축하였고, 경사가 심하지 않은 서쪽과 서남쪽은 지형을 삭평 (削平)하고 판석(板石)으로 기초를 다져 외험내평(外險內平)하게 만든 위에 석축하였으나, 지금은 성벽이 거의 무너졌다. 한편 외성은 평탄한 곳에 석축하였는데 동쪽부분에 길이 39.58m, 높이 0.6m, 두께 3m의 토루가 완전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북쪽과 서쪽은 흔적이 희미하고 기반에 잡석(雜石)도 박지 않아서 이 성이 동쪽으로 방어하도록 축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유물로는 백제 토기편과 신라 토기편이 발견되고 통일신라~고려대의 토기 및 기와조각이 발견된다. 성내에는 1945년에 세운 단군제단(檀君祭壇)과 단군시조신도비(檀君始祖神道碑), 단군전(檀君殿)이 있어 유명하다.

밀천군 박숭원 호성2등 공신녹권 (密川君 朴崇元 扈聖二等 功臣錄券)

소재지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월탄리

종류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6호

상세정보

밀천군 박숭원 호성2등 공신녹권(密川君 朴崇元 扈聖二等 功臣錄券) 사진

박숭원(朴崇元 , 1532∼1592)은 조선 선조(宣祖)때의 공신으로 자는 상화(尙和), 시호는 충정(忠靖),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명종(明宗) 19년(1564)년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을 거쳐 동부승지, 대사헌, 충청도 관찰사, 도승지를 역임하다가 선조(宣祖) 25년(1592)에 한성부 판윤(漢城府 判尹)이 되었다. 이때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왕을 모시고 의주(義州)의 행재소(行在所)에 호종(扈從)하다가 병사(病死)하였다. 이때의 공로가 인정되어 선조 37년(1604)에 비록 사후(死後)이기는 하지만 호성공신 2등(扈聖功臣 二等)에 책록되었다. 호성공신이란 충근정량갈성효절협제호성공신(忠勤貞亮竭誠孝節協第扈聖功臣)의 약칭으로 선조가 의주까지 몽진할 때 시종(侍從)하는데 특히 공이 컸던 사람에게 준 훈호(勳號)인데 이항복(李恒福) 등 모두 86명으로 1등 2명, 2등 31명, 3등 53명이다. 이 녹권(錄券)은 2등 공신인 박숭원에게 내려진 것으로 필사(筆寫)된 뒤에 "시명지보(施命之寶)"의 도장이 찍혀 있다. 내용은 첫머리에 박숭원의 공을 찬양하는 교서(敎書) 다음에 호성공신 책록의 경과와 공신에 대한 포상(褒賞)의 내용이 있고, 공신의 명단이 있다. 역사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며 보존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효충사(孝忠祠)

효충사(孝忠祠) 사진

소재지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연정리

종류

유교유적

상세정보

효충사는 1929년에 한양조씨(漢陽趙氏)의 선조인 이조참의(吏曹參議) 파서(坡西) 조순생(趙順生, ∼ 1454), 병조정랑(兵曹正郞) 인촌(仁村) 조명(趙銘), 은진현감(恩津縣監) 모계(慕溪) 조강(趙綱, 1527∼1599)의 위폐를 봉안한 사당으로 매년 음력 2월 말정일(末丁日)과 8월 말정일에 향사한다. 지금의 사당은 1929년에 세우고 1975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3간, 측면 2간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인데 내부는 통칸 마루방에 중앙에 분합문과 좌우에 협문을 달고 앞퇴를 두었으며, "충효사(忠孝祠)"라는 편액을 걸었고 마당 앞에 삼문을 세우고 "성인문(成人門)"이라 하였다. 둘레에는 담장을 쌓았다. 사당 앞에는 "상현재(尙賢齎)"라는 강당이 있다.

김을생 효자각(金乙生 孝子閣)

김을생 효자각(金乙生 孝子閣) 사진

소재지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다락리

종류

효자각

상세정보

이 효자각은 조선 숙종 26년(1700)에 효행으로 복호(復戶)된 경주인(慶州人) 송재(松齋) 김을생(金乙生, 1570∼1622)의 효행을 기리어 세운 정려이다. 지금의 효자문은 광무 1년(1897)에 중건하고 1970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간 측면 1간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는 효자문 편액을 달았다. 그리고 건물 안에는 1981년에 세운 "효자김을생정려비(孝子金乙生旌閭碑)"가 있다.

청풍 김문 효자각(淸風金門 孝子閣)

청풍 김문 효자각(淸風金門 孝子閣)  사진

소재지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탑연리

종류

효자각

상세정보

이 쌍효각은 조선 숙종 39년(1713)에 현종때 사미(賜米)를 받은 김연(金縯, 1616∼1687)의 효행을 기리어 세운 정려에 동생인 효자 김제(金齊, 1617∼1698)를 합설한 청풍김씨(淸風金氏) 형제의 효자각이다. 지금의 쌍효각은 1971년에 중건하고 1975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간 측면 1간의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 두형제의 효자문 편액을 한 목판에 새겨 걸었다. 그리고 1971년에 제작한 "청풍김공양혀정려기(淸風金公兩孝旌閭碑)"가 걸려 있다.

김봉로 효자각

김봉로 효자각 사진

소재지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탑연리

종류

효자각

상세정보

이 효자각은 조선 영조 34년(1758)에 청풍인(淸風人) 김봉로(金鳳魯), 1679∼1748)의 효행을 기리어 세운 정려각이다. 본래는 강외면 연제리 담안마을에 세워졌으나 1970년 4월 후손들이 사는 강내면 탑연리 탑수마을의 현위치로 이전하였다. 지금의 효자각은 1931년에 중건하고 1970년에 이전 복원하고 1985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간 측면 1간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 효자문 편액을 걸었다. 영조 39년(1763)에 김종후(金鍾厚)가 짓고 쓴 정려기(旌閭記)와 1970년에 김진협(金鎭協)이 지은 중수기(重修記) 기문판이 있다.

강화 최씨 열녀각

강화 최씨 열녀각 사진

소재지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학창리

종류

열녀각

상세정보

이 열녀각은 조선 숙종 2년(1676)에 경주인(慶州人) 이선소(李鮮昭, 1596~ ? )의 처 강화최씨(江華崔氏)의 정렬을 기리어 나라에서 세운 정려이다. 본래는 학천리 양지마을에 있었으나 1920년에 충북선 철로공사로 음지마을의 현위치로 이전하엿다. 지금의 열녀각은 숙종 7년(1681)에 개건하고 1985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간, 측면 1간 겹처마 팔작지붕의 현대식 시멘트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는 정문 편액을 걸었다. 그리고 1921년에 이필영(李苾榮)이 짓고 이재각(李在珏)이 쓴 "이건기(移建記)" 목판이 걸려 있다.

이봉우 효자비(李鳳雨 孝子碑)

이봉우 효자비(李鳳雨 孝子碑) 사진

소재지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저산리

종류

효자각

상세정보

이 효자비는 1966년에 경주인(慶州人) 농강(農岡) 이봉우(李鳳雨, 1902~1970)의 효행을 기리어 세원 비석이다. 비문은 충북대학교수 동천(東泉) 조건상(趙健相)이 짓고 우송(又松) 이상복(李相馥)이 썼으며, 전면에 "이봉우선생창효송덕비(李鳳雨先生彰孝 頌德碑)"라는 비명을 새겼다. 1984년에 신축한 비각은 정면 1간, 측면 1간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으로 사면에 낮은 벽을 쌓은뒤 홍살로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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