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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성리

강내면 태성리를 소개합니다.

위치

태성리 사진

태성리는 면의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동은 궁현리, 서는 사곡리, 남은 산단리, 북은 황탄리와 다락리에 접해있다.

연혁

태성리는 본래 청주군 西江內 二下面의 지역으로 三國鼎立 시대에 백제가 청주 上黨山城을 쌓고 그 衛城을 恩積山에 石城을 쌓으면서 錦江(美湖천)을 따라 領土를 경계 하게 되고 哨城을 흙으로 쌓았는데 지금의 궁현에서부터 台城里 끝까지이니 토성의 尾 가 된다고하여 토성미라 부르다가 日帝때 마을 명칭을 개정할 때 태성리로 부르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三山洞, 華亨里, 궁현里, 蓼谷里, 大溪里 일부를 병합하 여 台城里로 江內面에 편입하였다. 1975년에 요곡, 행절, 진등올 1리로 하고 원태성, 삼산, 용실을 2리로 분구하였다.

자연마을

  • 원태성 : 태성리의 중심이 되는 자연마을.
  • 요곡 : 태성의 동쪽에 있는 마을.
  • 행절(華亭) : 요골과 태성사이 북쪽으로 있는 마을인데 유생들이 글을 읽던 화양정이라는 정자가 있어서 화양정이 행절로 부르게 되었다.
  • 삼산(三山) : 태성의 서쪽에 있는 마을.
  • 용실 : 삼산의 서쪽에 있는 마을로 龍沼에서 용이 나왔다하여 지어진 이름.
  • 퇴미 : 태성과 요곡의 중간에 있는 마을.
  • 진등 : 행절에서 북쪽에 있는 마을.
  • 멱동 : 삼산 앞에 있는 자연 마을.

기타지명

  • 용소삼산 뒤 삼봉산아래 강변에 있던 못인데 애기주먹만한 명주실꾸러미가 다 풀릴 정도로 깊었으며 용이 등천하였다 한다.
  • 개안삼산 앞 들.
  • 옹주골태성과 삼산 사이에서 황탄쪽으로 올라가는 들.
  • 싸리울멱동에서 동남간 골짜기.
  • 황새모통이태성과 삼산사이 산모통이.
  • 물방아개안삼산앞들, 옛날에 물레방아가 있었다.
  • 뒷골물방아개안과 사곡 2리 사이 골짜기.
  • 삼수골삼산과 용실사이 들.
  • 삼봉산삼산 뒷 산.
  • 선녀고개용실과 사곡 사이 뒷산.
  • 사모바위용실에서 사곡 1리로 돌아가는 곳에 사모같이 생긴 바위.
  • 福頭山원태성 앞에 있는 산인데 복지붕 또는 말무덤이라고도 부르는데 임진난때에 名將 李如松이가 靈氣를 끊기위해 이곳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口傳이 있다.
  • 토성백제때에 소성을 흙으로 쌓은 城인데 궁현에서부터 시작하여 태성에 와서 끝이난 城이다.
  • 사찰용실마을에 용담사가 있다.
  • 마을회관1995년 1월에 요골에 세운 태성 1리 마을회관과 1992년 12월에 태성 마을에 세운 태성 2리 마을회관이 있다.
  • 교회삼산마을에 태성 성결교회가 있다.
  • 느티나무閔百孝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서당과 모정을 짓고 느티나무를 심은 것이 지금은 아름드리 고목이 되어 200여년간 마을 주민과 榮枯盛衰를 함께하며 마을을 지키고 있다.

집성

朝鮮朝 英祖王 戊子年에 驪興閔氏 (始祖는 閔稱道)의 24세손 監察公派 閔百孝가 陰城지방에서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200여년 子子一村하여 전성기에는 30여호 살면서 巨富와 材士도 많이 배출하였는데 현재는 6호가 남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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