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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선진 농업기술 눈부셨다 내용, 파일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제목 백제 선진 농업기술 눈부셨다
내용 백제가 부여에 도읍한 사비시대(538~660)의 고도로 발달된 농업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유적이 발굴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충청문화재연구원(원장 박순발 충남대 교수)은 지난 3일 충남 부여 능산리 나 성유적 현장에서 유적검토위원회 및 현장설명회를 열고, “사비시대
수전(水田) 과 수로 및 목책유구, 2동의 대벽건물지, 우물지, 도로로 추정되는 유구(遺構)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유적은
모래층 위에 조성된 수전유적 으로 당시 도성을 둘러싼 동나성(東羅城) 바깥 지역인 충남 부여 능산리에 위 치하고 있다. 현재 국도 4호선
부여∼논산간 도로 확·포장공사가 시행중인 곳 으로 남북으로 동나성이, 동서로 왕포천이 각각 관통하고 있다. 발굴지역 바로 위쪽에 있는 왕포천과
4호선 국도 맞은편에 지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 등이 발굴됐던 능산리 유적과 고분군이 위치한다. 특히 이번 발굴에서 백제와 일본지역에서
발견되는 벽체가 기둥역할을 대신하 는 벽주건물(이른바 대벽건물) 중 모서리 기둥(우주·隅柱)이 2중으로 달린 건 물이 처음으로 확인된 점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이밖에 ‘영가(寧可)’로 판독 된 묵서(墨書)가 남아 있는 목간편과 우마차용 수레바퀴 추정 목재편 등 각종 목재유물과
토기도 출토됐다. 그러나 역시 이날 이번 발굴의 초점은 유기물 퇴적층이 두꺼운 다른 저습지들 과는 달리 옛 왕포천의 잦은 범람으로 모래가
퇴적된 곳에 인공적으로 조성한 수전 유구에 맞춰졌다. 수전을 만들기에 불안정한 지역에 만들어진 탓에 면적 이 10~20㎡ 크기로 소구획됐지만
불규칙한 모양의 청동기시대 수전 유구와는 달리 남북 축에 가로 5~6m, 세로 4~5m 크기의 방형(方形)으로 정형화된 것 이 특징이다. 이날
유적을 검토한 이홍종 고려대 교수는 “유기물 퇴적층이 없 는 모래층 위에 조성된 백제 수전으론 처음 발견된 것”이라며 “농경지 확대과 정에서
사비시대 농업의 기술적 수준을 보여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에서도 고훈(古墳)시대 이후 이런 형태의 수전이 집중적으로 등장하고 있 다고
소개한 이 교수는 “야요이(彌生)시대 이래 자체적으로 발전돼온 기술인 지 고훈시대 한반도에서 계승된 것인지를 둘러싸고 일본 내 논란이 있는
상황 에서 이번 발굴은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옛 왕포천의 잦은 범람 때문에 수전으로 지속적으로 사용되진 못했을 것이란 게
그의 평가다. 이와 관련, 박순발 원장도 인근 수혈유구에서 불에 탄 흙과 유리 슬래그 등의 파편이 출토돼 이곳에 공방과 관련된 시설이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6세기 전반 나성 축조시기와 거의 동시 혹은 직후에는 논과 같은 경작지로 활 용됐으나 이후 퇴적이 진행되면서 공방
등이 설치되는 시설대지화한 것으로 보 인다”며 “사비시대 도시공간의 확대 등 도성 주변 경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능케해주는 자료”라고
덧붙였다. 모서리 기둥이 2중으로 돼 있거나 연약지반의 기둥 아래 초반(礎盤·주춧돌)이 놓인 2동의 대벽건물지는 이번 발굴에서 수전과 함께
가장 학술적인 의의가 큰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나라(奈良)와 교토(京都), 시가(滋賀), 나가노(長 野), 아이치(愛知), 돗토리(鳥取),
효고(兵庫) 등지에서 5세기 전반부터 등장하 는 대벽건물은 한반도 도래문화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해석돼왔다. 한반도에 선 공주 공산성, 정지산
유적, 안영리 유적, 부여 군수리 등 주로 백제지역에서 발견됐으며 일본 열도 지역을 포함해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모두 53동 가량이 다.
건물의 용도는 주거용이라기 보다는 공방이나 수확한 곡식을 보관하는 등 의 용도로 쓰였을 것이란 게 박 원장의 추정이다. 부여〓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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