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홍식
신홍식(1872~1937)은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인차리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동오(東吾),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그는 사회제도의 모순과 한말의 국운을 우려한 나머지 30세에 기독교에 입교하여 1913년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 감리교 목사로 공주에서 종교운동과 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는 평양 남산현교회 목사로서 재직하던 중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3·1운동 추진계획에 있어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감리교 계통의 책임을 맡아 활동하였다.
그는 3·1운동 이후 1920년 경성 복심법원에서 2년형을 선고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었다. 출옥 후에도 인천, 원주 등지에서 목사로 재직하면서 종교운동과 민족정신 고취에 힘쓰는 한편 순리에 따르는 종교인의 태도에 입각해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여러 차례에 걸쳐 구금된 바 있다.
그러나 끝내 뜻을 굽히지 않고 독립운동을 계속 전개하던 중 1937년 1월 27일 65세로 서거하여 고향 땅에 묻히었다. 정부에서는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고 1980년에는 청주시 우암산에 삼일공원을 조성하고 그의 동상을 건립하여 공적을 기리고 있다.